아침묵상 / 12월 4일 금요일
시편 1편(1~6절)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은 일반적으로, 시편 전체의 주제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시편이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의 결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악인의 결과는 무엇인지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
성경 전체가 그러하듯이, 시편이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 그리고 그의 섭리와 실제적인 관계를 전제합니다. 그것이 진실 이요, 진리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곧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복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코미디 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것들은 하지 않고, 어떤 것은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은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 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무시하며 죄에 대한 의식이 매우 경박하고 선한 양심이 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하게 지낸다면 반드시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될 것 이기에 그러한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해야 할 것이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은 ‘오직’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그러나’(But) 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악인들과 죄인들, 그리고 오만한 자들과 정 반대되는 특징을 지닌 대상이 있으니 그 분이 바로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 분의 길에 서며, 그 분과 자리를 함께 하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겁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선지자는 거의 동의어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 하면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의 결국
시인은 이제,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결국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의 결국은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이것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에 비유합니다. 수분과 양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된 나무와 같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그는 너무나도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존 칼빈은 이 본문을 해설 하면서, 시냇가의 비옥한 땅을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함으로, 그리고 시냇가의 풍부한 물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의미를 묘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묵상에 대해서 수시로 강조하고, 설명해 드리는 바와 같이,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함께 성령 하나님의 감동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주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의 나무에 충분한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영적인 힘으로 구체적인 삶 속에서 높은 차원의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되고, 각자의 직업의 소명 에도 지혜롭게 최선을 다하므로 일반적으로, 매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공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청교도들 이었던 위그노들의 직업관과 그들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의 정치와 결탁 했던 로마 카톨릭 세력으로부터 처참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의 각 나라로 피신을 하게 되었는데, 위그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계가 스위스의 세계적인 시계들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자동차가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들입니다. 그들은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들이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들과 자손들이,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그들로 인하여 형통하고 번영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와 약속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지상에서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절의 말씀처럼 그러한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결국
그렇다면, 악인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물론, 정반대 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것이 진리요, 진실 입니다. 악인들은 때때로, 혹은 간혹, 형통하는 것 같을 지라도 결국은 망합니다.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왜냐하면, 온갖 악한 꾀와 술수로 사람들과 세상의 법을 피하며 견딜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록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 지라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여김을 받고, 여호와를 경외 하면서 의인의 방향,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의 전환이 없다면, 그들은 결코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천적 적용
그러므로,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 된 저와 여러분들은 얼마나 복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이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가 자신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약에서 일컬으시는 의인의 매우 독특한 특징중의 하나는 자신의 것을 흩어서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고아와 과부와는 비교될 수도 없는 우리같은 죄인들, 악인들, 오만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하신 자신의 아들을 흩으셔서, 곧 십자가의 제물 삼으셔서 그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같은 자들을 그 의로움에 초대하셔서 의인의 회중, 곧 교회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한 지역교회인 우리 샘솟는 교회는 얼마나 아름답고 놀랍습니까? 교회의 건물이나 재정,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를 가지고 지역의 교회들을 조금이라도 판단하려 든다면, 그것은 얼마나 천박 하며 신성 모독적인 것입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한 지역교회의 지체들이 되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곧 우리가 의인의 회중에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격과 감사가 넘쳐나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께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 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복됩니까? 여러분들이 카톡방에서 나누는 축복과 위로와 격려는 얼마나 아름답고 귀합니까? 그렇게 계속 하십시다.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타이밍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케 하실 것을 압니다. 이 어두운 시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었고, 실제로 감당하기 어려운 코로나 19 펜데믹의 시대에도 말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도록 하십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비교될 수 없이 치명적인 죄와 악과 오만함의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고 각성된 영혼을 소유하는 일에 힘쓰십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