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큰 고통
시인 다윗의 큰 고통이 호소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고통이었던지 첫째로, 육체적으로 수척해 졌고 뼈가 떨리기까지 할 정도로 아프다고 고백 하면서, 자신을 고쳐달라고 애원합니다. 둘째로, 어쩌면 더 큰 고통은 영혼의 기력마저 사라져서 자신의 영혼도 떨린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느 때까지니이까?”(3절)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이 의문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고통이 꽤나 오래 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1절에서 이 큰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의 분노로 인한 책망과 주의 진노로 인한 징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 우리가 경험하는 육체적, 영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언제나 우리의 죄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편 6편에서 볼 수 있는 다윗이 경험한 고통과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의 분노와 징계를 가져오는 죄와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은밀한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인정되는 일일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로 인해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떨릴 정도로 꽤나 오랜 시간, 그것도 큰 고통의 때를 지나야 했습니다.
저는 목사일 뿐만 아니라,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자신과 많은 교회들과 온 세상이 경험하고 있는 육체적이고 영적인 질병들, 특히 모든 지구인들이 ‘코로나 때문에..’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말할 수 밖에 없는 이 특별한 일이 아무런 원인도 없이, 하나님의 아무런 간섭도 없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누구이든 여호와를 경외하며, 정직한 영으로 감동되는 자마다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여, 주의 분노로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진노로 징계하지 마소서.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고통의 잔을 거두어 주소서!”
정직한 간구
시인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그것을 ‘정직함’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간구 합니다. “고치소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 하소서.”(4절) 그는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뒤로 물러 갔고 육체적인 질병으로 큰 고통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는 ‘페이버의 때’(the time for favor)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으면 대부분 해결의 길은 열립니다. 문제는 우리가 둔감 해져서 자신이 경험하는 영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요, 또한 그의 마음이 다윗처럼 깨뜨려져서 매우 직접적이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면, 혹은 현재의 상태를 진실하게 살펴보면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느 때는 긍정적으로, 또 어느 때에는 부정적으로 유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육체를 지닌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7장에서 보는 사도 바울의 씨름이었으며, 자신의 모든 삶을 뒤돌아보며 참회록을 적어갔던 어거스틴의 고뇌였습니다. 아니, 오늘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경험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그 누구가 이 과정을 아무런 일도 없이 통과하여 죽음의 요단강을 건널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읽혀지는 ‘천로역정’의 주인공인 기독자, 곧 크리스챤은 가장 가엽고 우수운 한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영혼의 고통과 심지어는 육체적인 고통에 이르게 되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답이 있습니다.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한 영을 주시기를, 그래서 간곡한 간구함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페이버를 베푸시기를 믿음으로,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 놀라운 페이버의 인장(seal) 반지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얼마나 다행이며,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 말할 수 없는 복된 진리를 지닌 우리들은 다윗과 함께 우리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