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지만, 결코 이 세상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고백합니다.
➫ 그러니까 주님 안에 거하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그는 이 세상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이 세상을 해석하고 이 세상을 지혜롭게 분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이 신자의 삶이라는 묵상일 것입니다.
기도자는 행복의 기원에 이어서,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행위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맞춰질 때, 자신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시험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만족시키는 데서가 아니라, 보내주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는 삶 속에서 참된 만족과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천사들의 영과 성품을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행하는 영들이요, 그러한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성품과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기도자의 이해와 결단은 얼마나 단호합니까? 행복의 기원과 성취에 있어서 어떠한 타협도 없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아마도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 기도자의 행복에 대한 견해와 결단에 대해 너무 과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우리 신앙의 본질과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이 진리와 신앙의 원리를 부인할 길은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자는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제가 좀 풀어서 이렇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주님, 제 자신의 힘으로는 행복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위대한 진리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무엇이 다릅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사도 바울은 이것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강하게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하기에, 기도자는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은 단순합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고백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 자체가 철저히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구원 이후에 거룩하게 되는 삶(성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며, 우리의 노력과 행위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