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3/소망의 인내(1)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소망의 대상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강해하며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 간결하게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본문의 배경
오늘 설교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가장 초반부인 인사말에 해당됩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에 거의 이러한 패턴으로 인사를 하는 그 당시의 편지들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사도와 그의 일행은 일정 기간동안 사역을 한 뒤에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바울 자신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곳으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자신은 아덴에 머물면서 디모데를 그 곳으로 보내게 되고, 디모데가 와서 상세하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게 됩니다.
첫째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교회가 여전히 사도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사도는 이렇게라도 편지를 써서 그들을 격려하고 권면 하기를 원했습니다.
2) 소망의 대상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고 그들을 격려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들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들의 신앙적인 특성이었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교제할 때에든, 혹은 디모데를 통해서 들었을 때에든,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이렇게 뚜렷한 세 가지 정도의 뚜렷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절 후반부의 본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주제인 ‘소망의 인내’로 약간 범위를 좁혀보면 , 우선 첫째로, ‘소망의 대상' 이 나옵니다. 원문을 직역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면전 안에 있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 입니다.
저는 이 꾸며주고 또 꾸며주고 있는 문장의 구조를 이렇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일단,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계시냐 하면,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로 마주 대하시면서, 곧 저 하늘나라, 곧 성부와 성자가 함께 거하시는 바로 그 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그러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하늘나라의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망이 바로 하늘에 계신, 그것도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히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3) 소망의 인내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소망이 무엇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인내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오기전에 빌립보를 거치게 되었는데, 그가 데살로니가전서 2:2절에 보면 이러한 탄식어린 고백이 나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빌립보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는 그의 전도여행 기간 중에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은자가 된 적도 있었고, 어디를 가든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천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2:14, 15 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큰 고난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이방인들이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동족에게서 그들 역시 동일한 고난을 받았으며, 게다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대적이 되어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려고 치면, 그들이 그렇듯 수 많은 자신의 이방인 동족들과 유대인들의 능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내 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들의 소망을 저 하늘 아버지의 면전 앞에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고 응원하시며, 도적과도 같이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신조어를 만들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그것은 “Christianity Elpisism” ‘기독교 소망주의’ 입니다.
헬라어 엘피스는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근거 있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소망주의자가 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근거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 앞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엘피스는 잃을 수가 없는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이 저 하늘 아버지와 친밀하게 함께 계시며 이제 속히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one hundred persent, 아니 absolutly, 절대적으로 잃어버릴 수 없는 근거가 있는 소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내가 필요한 일들은 무엇인지,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 있는지를 잠잠히 생각하며 묵상해 봅시다.
2) 오늘 말씀처럼, 소망의 대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묵상한 어려움들을 인내하며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고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간구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