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1~/소망의 인내(5)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목격한 두 가지와 보좌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차례대로 강해하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과 이 땅에서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세례요한이 본 두 가지
사도요한이 본 첫 번째는 1절의 말씀처럼, ‘새 하늘과 새 땅’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드셨던 궁창, 곧 하늘이 없어졌고, 바다와 바다가 모여서 드러나게 되었던 땅도 없어졌고, 또한 모든 바다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사도요한이 두 번째로 본 것은 2절의 말씀처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처음에 지어진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의 도성’를 의미합니다. “City of God” 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망하게 되는 것이냐 하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것 같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준비된 우리의 거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고, 그가 본 것은 우리가 보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2) 사도요한이 들은 것
그러한 후에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의 3절과 4절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오래 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그 예언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첫째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중에 거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장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성,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거주할 장막을 의미하고, 우리가 영원히 살 그 장막에서 함께 거하실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 집에서 외국인이나 심지어 하인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 백성, 곧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이라는 한 민족과 나라를 택하셔서 샘플링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역사와 습속, 그리고 언어와 생활방식을 그대로 다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완벽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시해 주신대로, 그 샘플이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퍼져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죽음과 고통을 가져오는 팬데믹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하는 거룩한 복음의 전염이 온 세상에 일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심지어 다윗과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할 한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오직 그 분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위로와 소망의 음성이 요한에게 들려졌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 설교하는 동안 제 속에서 강하게 외쳤던 메세지를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여러분, 죽음과 그로 인해서 애곡하는 것이나 울부짖는 것, 그리고 모든 육체적 고통의 원인인 질병들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본래부터 그랬던 것입니까? 본래 인간은 자연적으로 죽을 운명으로 진화된 것이었습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로 정신적 슬픔과 육체적 질병과 그에 따른 수 많은 애통과 고통 들이 생겨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 곧 첫 아담, 4절 마지막의 표현대로라면, ‘the first things’ 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무나 불행하게도 이 첫 아담 안에서, 곧 아담의 불순종의 범죄와 타락 안에서 이러한 첫번째의 것들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4절의 말씀이 소망으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오면, 첫 아담 안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죄와 그 죄에 대한 책임이 법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예수께로 넘겨집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오면, 죽음과 슬픔과 고통을 가져온 바이러스의 모체 와도 같은 그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종식됩니다.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
이것이 오직 유일한 죄를 죽이는 백신의 결정판 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여러분의 두 눈에서 흘렸던 모든 눈물 방울 하나하나를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많이 나도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많이 울면서도 잘 견뎌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능히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많은 죽음을 보며 크게 슬퍼하고 애곡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죽음을 보고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또한 그렇게 하겠지만, 그 곳에는 더 이상 눈물을 흘려야 할 일들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수 많은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을 느껴야 하겠지만, 그 곳에는 더 이상 그러한 질병들과 고통들도 없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망의 음성을 일평생 마음에 새기시고 지금 다가온,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장애물들을 이 소망의 인내로 능히 극복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언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사도요한이 보고 들었던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소망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에 대한 각자의 반복적인 읊조림(묵상) 속에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불붙게 해 주시기를 실제로 기도의 실천으로 옮겨봅시다.
2)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눈에 눈물이 고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눈물을 닦아주실 하나님과 죽음과 슬픔과 질병과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 없는 영원한 예루살렘 성, 곧 하나님의 도성(도시)를 묵상해 보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유투브에서 찬양을 들어도 좋고, 직접 불러도 좋습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https://youtu.be/KdEvzNsUb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