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5/온유한 자의 복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장~7장에 대한 일련의 강해설교로서 ‘예수님과의 산행’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였고, ‘온유하다’ 는 것은 무엇이며,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은...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을 그의 형제들인 아론과 미리암이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모세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비방을 했는데, 3절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그들의 비방과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온유하게 상대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셋을 회막으로 불러 모으셔서 모세의 충성됨을 인정해 주시면서 미리암에게 나병이 들게 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모세는 또한 그 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영어번역 성경은 ‘meek’, 혹은 ‘gentle’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온순한’ ‘온화한’ ‘정다운’ ‘관대한’ ‘친절한’ 뭐 이렇게 까지 의미역이 가능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단어들을 듣기만 해도 온유한 품성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은 성경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이 팔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키워드로 삼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관점에서, 즉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영적인 측면에서 이 ‘온유하다’는 어휘를 이해한다면 이 ‘온유하다’라고 하는 말은 단지, 인간의 자연적이고 다듬어진 온화하고 잰틀한 면모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거듭난 사람들의 인격적인 특성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진중히 여기고 그 명령에 순종하려고 하는 신앙의 추구 속에서 형성된 신앙적인 특성을 말합니다.
<예증> 모세의 온유함
우리말 성경에서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해보면, 온유한 사람은 ‘대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모세가 살았던 고대시대에는 ‘종’, 곧 ‘노예’가 거의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전쟁을 통해서 잡혀온 사람들이었는데, 이 히브리어 단어가 말하는 대답하는 사람이란 바로 주인의 질문이나 요청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대답을 하는 ‘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의 온유함이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보다 승했다. 곧 ‘가장 온유했다’는 말씀은 그토록 모세가 자신을 하나님의 노예로 여기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질문과 명령에 ‘예’ 하고 대답을 하고 순종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우리는 ‘humble’ ‘겸허함’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 어떻게 온유해 지는가?
크게 둘째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강조하신 ‘온유한 자’가 될 수 있겠는지 그것도 모세의 예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는 40여년을 이집트의 상류계층에서, 그리고 살인자로 낙인이 찍혀서 40여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일반적인 성향과 성품은 초기 40년에 모두 형성이 된 것이고,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광야에서의 40년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최고의 온유함’을 형성한 시기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광야에서 ‘지면에서 온유함이 가장 승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광야는 자신을 가장 많이 대하고 또한 자연과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가장 많이 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갈 때와 또 다른 40여년을 광야에서 지내고 났을 때와는 모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모로 알 수가 있습니다.
(3) 땅을 상속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예수님께서 그러한 종류의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이며, 누누히 말씀을 드리거니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땅, 곧 물질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비롯한 여러가지 복들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진실입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이 ‘온유함’ 이라는 것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은사가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성품은 오랜 기간동안 광야에서 단련된 성품입니다. 수 많은 분노와 불순종, 교만과 실수들이 하나둘씩 깎여나가서 시냇가의 모가 없는 조약돌처럼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대답하고 순종하는 삶이 깃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덕목이 바로 이 ‘온유함’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복이 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수 많은 복들중에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실제로 받습니다. 지금도 땅이라는 것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는 땅을 상속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소유한 사람은 종들과 가축들을 부려서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축복의 메세지>
온유한 자들이 되어서 땅을 기업으로 받고, 그것을 가지고 더욱 유익하고 영향력있는 일을 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좀 더 성경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이 땅에서 유산으로 받는 기업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이미 영원한 기업을 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니, 우리는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3. 실천적 적용
1)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께 겸허해지고 온유함을 훈련받았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미디안 광야는 어디일까요? 설교자는 그것을 개인의 묵상과 관련해서 적용을 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설교시간에 1차적으로 적용한 실제로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온유한 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영역의 주권을 선포하는 측면과 최종적으로 온유한 자가 상속할 저 하늘의 영원한 기업에 대해서 더욱 생각해보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