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장~7장에 대한 일련의 강해설교로서 ‘예수님과의 산행’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였고,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장의 직전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수 많은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적당한 자리에 앉으시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다가왔고, 그때부터 입을 여셔서 그야말로 보석과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원문에는 ‘복이 있습니다’ 가 강조되어서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렇게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가난한 자’ 인데, 뒤에 ‘in spirit’ 이 붙어 있으니까 이것을 넣어서 직역을 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복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에 가난한 자에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은 물질적인 부에 대한 필요와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부요함에 대한, 곧 영적인 필요와 목마름을 간절히 느끼는 사람을 말합니다.
*** 설교하면서 가장 강조되었던 부분의 설교원고를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큰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물질적인 가난함은 그냥 그것 자체를 자신의 육체와 감정으로, 주변의 상황과 환경과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바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반면에 영적인 가난함은 사람들 스스로가 인지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영적인 무지’와 ‘영적인 무감각’이라고 지칭을 하겠습니다.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즉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친 아들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셔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독하고 저주하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수 많은 것들을 자신의 신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이 인간에게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자신을 창조하신 분,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채, 자신의 영혼이 그토록 비참한 상태에 있는데도 그것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까? 그것이 바로 ‘죄의 가공할 만한 능력’ 이라는 것이 성경진리의 뚜렷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 됩니다. 이 진실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지,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목마르고 배가 고픈지를 자기 자신이 통렬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그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물이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본능적으로 땅을 파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목마른 사슴과도 같이 그는 간절히 영적인 갈증을 해결하기 원하는 복된 마음이 됩니다.
2)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개념보다는 매우 영적이고 영속적입니다. 좀 더 쉽고 경험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적’ 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새 예루살렘성, 하나님의 도성은 그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말합니다. 하늘의 왕국이라는 위치와 그 나라를 치장하고 있는 것들도 휘황찬란한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게 되는 복은..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는 복을 소유하게 되고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로 이 세상에 세우신 신적인 기관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을 이루게 되며, 그 분의 은혜와 진리를 누리는 복을 소유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심령이 가난해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각 개인은 그를 자신의 주요,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은혜롭고 능력있는 통치를 받아 죄와 유혹을 물리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놀라운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영적인 목마름이 사라지고 마음이 간절해 지지 못한 상태는 영적인 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어떤 생각이나 어떤 상황이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부요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보고 기도와 묵상으로 연결해 봅시다.
2)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우리가 소유한 세 가지 의미에서의 복을 떠올리며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그 분께 맡기며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