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8/예수님과의 산행(6)-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여섯 번째 설교로서 마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는지,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은 무엇인지를 교리적이고, 경험적으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마음이란?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는 크게 두 가지로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첫째는 ‘누스’ 라고 해서 주로 영어의 mind, 곧 지성적인 활동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고, 둘째는 ‘카르디아’ 인데, 오늘 본문을 비롯해서 신약 성경에서 157회가 사용 되고 있고, 이 단어는 ‘누스’ 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한 사람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행위의 원천이 되는 인간의 중심부를 가리킵니다.
즉, 한 사람이 거듭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흘러들어가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또한 ‘카르디아’ 라고 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연결될 때도 사용 되는데, 거듭나기 전에 인간의 내면 중심부에 죄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 악한 생각이 나오고 불순종하고 회개할 줄 모르며, 굳어져서 믿지 않으며, 우둔하고 어두워져 있는 곳을 말합니다.
(2)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지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을 보는 것’과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말 ‘청결함’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카타로이’(katharoi)라고 하는 단어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 혹은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에 불순물이 들어와서 ‘추잡함’의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오염이 되어서 더러워질 수도 있을 가능성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종교의 매우 독특 하고도 신비한 요소입니다. ‘가변성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매우 변화 무쌍해서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 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할 길이 없게 되는 신비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요,
그 중에서도 이미 구원을 받아서 마음에 가득한 죄의 사함을 받고, 순수하고 깨끗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마음에 불순물과 오염물질이 스며들어서 다시금 청결함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마음을 지닌 것이 또한 신자의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가 중요하고, 그것을 알았다면 그 방법론을 가지고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가장 디테일한 최고의 교사요, 성경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입니다. 그가 자신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의 목회를 돕기 위해서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5~10절 정도까지의 말씀입니다.
5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디모데의 목회현장에 놓여 있는 대적이 나오는데, 믿음에서 떠나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곧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이론으로 가져왔던 구체적인 혼란은 ‘결혼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적이고 이교적인 비진리와 거짓, 그리고 그런 불순한 이론으로부터 나온 행위들이 얼마나 교회를 어지럽게 할 수 있는 지를 간파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고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 무이한 ‘어떻게’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디모데전서 4장 5절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러면서 사도는 6절부터 10절에서 ‘경건’ 에 대해서 말합니다. 결국,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경건한 영혼의 근육, 곧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때,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청결해 집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말한 경건의 비밀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의미하며, 특별히 거룩한 묵상의 의무를 실천하면서 진정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디모데전서 3장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 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과 청교도 경건의 핵심인 묵상에 대해서 함께 배우기를 원하고 그 묵상의 본질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참회함이 늘 충만해서 마음이 청결해 지며,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적 메세지>
**지난 주일 설교시간의 한계로 말씀드리지 못한 메세지를 이 곳에 그대로 적어 봅니다. 제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던 부분입니다.
여러분, 너무 좋지 않으십니까? 왜그렇습니까?
만약에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또한 제시해드린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며, 경험적인 이 구체적인 경건과 묵상의 이론과 실천을 병행 하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러한 신비한 경험들을 능히 허락하시는 분이시니까 메이비.. 그렇게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경험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하고 놀랍게 마음의 청결함 속에서 우리의 영이 지성적으로, 그리고 또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마치 깜깜한 밤에 모든 전기가 나가서 희미한 촛불을 켜 놓고 있다가 전기가 들어와서 온 집이 일시에 환해지는 듯한 영혼의 눈 뜸과 영혼의 각성과 심령의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백내장 수술을 해서 늘 침침하고 희미하던 눈이 환해지고 상쾌해 지듯이, 우리의 영혼의 눈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일년 내내, 혹은 몇년 동안 어두움 가운데 살다가, 일년에 한번 기도원에 가서, 혹은 신통한 부흥강사를 모셔다가 1년 혹은 몇년 간 쌓아 두었던 마음 속에 무엇 인가를 해소하는 듯한 그러한 신앙생활은 이제 그만 이어야 합니다. 물론, 특별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원을 찾고, 정말 영성있는 말씀의 사역자를 초빙해서 집회를 갖는 것도 좋은 일이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엑스트라 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regular base for piety’, ‘정규적인 경건의 베이스’를 잘 구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나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돕고 격려하고 함께 하려고 여러분에게 보내신 말씀과 경건을 위한 사역자 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권위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목회자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십시요.
저의 인격적이고 목회 기술적인 여러가지의 약점들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막히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넓게 가지십시요.
지름길을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신비주의 신학과 약장수 꾼들의 속임수를 피하십시요.
경건은 그렇게 만병통치약 한 병을 마시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언어생활과 구체적인 행위가 성경이 말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것들이 되는 일에 있어서 잭팟을 맞듯이 일시에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저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지기를 힘쓰십시요.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십시요.
여러분의 영혼의 눈에 백내장을 걷어버리는 명약은 ‘회개의 눈물’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십시요.
이 모든 권면은 가장 넓게는 하나님, 곧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것이지만, 좁게는 여러분들의 성실하고 신실한 노력이 협조해야 가능하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참 종교에는 항상 놀라운 균형이 있습니다. 어떤 무지한 이들은 자신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저와 같이 성도들의 의지에 호소하는 것을 복음적이지 않고 율법적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마치 정치인들이 표를 얻으려고 국민들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아첨과도 같습니다. 자신은 복음을 외친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성도들이 별로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예수께서 다 이루셨으니 우리들은 단지 그것을 믿으면 된다고 하는 허탄한 불균형 속에서 안위를 받도록 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그것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균형잡힌 생각과 실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경건의 능력’ 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음이 청결할 것이요, 하나님을 볼 것이며,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의 몸이나 방이나 차를 정기적으로 청결하게 하듯이, 우리의 마음을 정기적으로 청결하게 하는 일은 오직 말씀과 기도속에서 흘리는 참회의 눈물 뿐입니다. 울려고 해서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주시는 은혜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정규적인 묵상과 기도를 실천해 봅시다.
2) 교회적으로 정해진 공적인 기도회에 더욱 충만한 은혜가 있어서 기도가 더 능력있어 지도록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참여하도록 합시다.
3) 한 주간 동안, 긍휼히 여기는 실천을 감당해 봅시다. 토요일에 있는 야드세일을 섬기는 이유도 긍휼사역을 실천하는 좋은 동기에서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