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9~34/세례요한의 증언(29~34만 읽기)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복음전도 주일을 위해서 요한복음 1장 19~34절까지의 세례요한의 증언을 핵심적으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의 핵심을 선언한 이후에 세례요한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더욱 강하게 선언합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도요한과 세례요한의 연역적인 증언
이 책의 저자인 예수님의 제자, 사도요한이 자신의 복음서를 쓰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인데, 그것은 예수 라고 하는 분이 진정으로 누구 이신가를 올바르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18절 까지 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마치 하늘이 무너질듯한 천둥소리와 지지직 거리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여러 갈래의 번개 와도 같이 이 세상을 향하여 장엄하게 선언 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바로 이 예수가 창세 전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 이시다.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하여 지어진 것이다. 곧 그는 창조주 이시다.
그 안에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빛이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요한, 곧 육신적으로 예수님보다 앞서 태어났던 세례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의 정체성을 증언해 나갑니다. 세례요한 또한 예수에 대하여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인간들 가운데 거하셨다.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자신보다 앞선 것은 자신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외아들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2) 유대인들의 반감에 대한 세례요한의 핵심적 증언
“왜 세례를 주느냐?” 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그 질문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오히려, 한 사람에게 그들의 시선을 집중 시킵니다.
“그렇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이신지,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는 것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자이다. 즉 나는 그의 노예가 될 자격 조차도 없는 자이다.”
그러면서, 그 날에 세례요한의 증언은 지는 해와 함께 마감이 됩니다. 그리고는 그 이튿날이 되었는데, 어제 세례요한에 의해서 소개되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 세례요한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눈 앞에 그 신발끈을 풀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 그 분의 샌들이 보였습니다. 그 분의 부드러우면서도 엄위하신 모습이 세례요한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례요한의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에 크게 감동되어서 위대하게 외쳤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미리 보내신 하나님의 메신저, 세례요한은 분명히 말하기를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신 그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는 그런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모두는 죄인들 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죄를 제해 버리기 위해서,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져버린 인간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놓여있는 그들을 다시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제물이 되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계셨으니 그 분이 바로 세례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감당하지 못할 진실은 그 분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무지한 자들이 일컫는 탁월한 도덕선생이 아니라, 4대 성인이 아니라, 수퍼맨도 아니라, 세례요한의 증언대로 자신보다 6개월 늦게 이 땅에 태어난 자신이 사촌 동생 이었지만,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곧 선재 하셨던 하나님 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론적으로, 세례요한은 인간의 입으로 증언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이시다” 사실, 세례요한은 자신도 그가 누구 이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는데, 자신을 그곳에 보내셔서 물로 세례를 베풀 라고 명령하신 그이, 곧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 인줄로 알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봤다고 하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의 위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그것을 본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분명히 십자가에서 세상죄를 자신의 몸으로 대신 지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시요, 진정한 구원자라는 것을 증언하시며, 오직 그 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그 분께 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또한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의 목적이 경건한 자,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고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증거된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영적인 경험을 사모합시다. 우리의 기도와 묵상 속에서 세례요한이 증언한 예수를 생각해 보고 그 분과 교제 하기를 힘씁시다.
(2)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거룩하신 영을 순결한 마음과 삶의 방식, 그리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또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순결함과 순종이 깃들도록 노력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