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5~7/소망의 바다(3)-영생의 소망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원이 가져다 준 영생의 소망과 그 소망을 따라서 주신 복된 신분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오늘 설교는 첫째로,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된 교리적인 기반을 사도바울의 언어를 따라 해설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축복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의 의미
사도바울의 논지를 따라서,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따라서 영생의 소망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5절의 맨 처음 부분이 말씀하는 바, 인간이 어떤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 구원, 곧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행위구원’ 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어떠한 지지를 받을 수도 없는 거짓된 교리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거듭나지 못한 지성은 성경이 말하는 은혜를 통한 십자가의 구원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이고, 오히려 인간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가 훨씬 더 이성적이고 깔끔하게 여겨져왔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든지 파퓰러 한 주장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그 구원의 일 전체가 성령의 신비한 역사 하심으로 인간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선 첫째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따라서 그토록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구약의 경건한 사람들이 그토록 흠모 하며 찬양 했던 ‘하나님의 헤세드’, 곧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인애하신 성품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들의 잘난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받아들일 수도 없는 구원의 일, 곧 십자가의 일을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경건하지 않았을 때에, 곧 무지와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었을 때에 계획하시고 오랜 세월 동안 역사속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이 진리는 항상 우리의 영혼에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오직 오늘 성경의 본문 안에서만 ‘구원’이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이 말한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 지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중생의 씻음’에 의해서 이고, 둘째는 ‘성령으로 새롭게 됨’에 의해서 입니다. ‘중생의 씻음’ 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 곧 거듭남을 ‘죄를 씻는 것’과 관련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침례 받는 장면을 연상해 보면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거듭난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그의 생각이나 말, 그리고 여러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변화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말 성경 으로는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 다음 6절 말씀이 연결되어나 나오는데, 사실은 6절 전체가 바로 앞에 있는 성령을 꾸며주고 있습니다. 중생의 씻음도, 새롭게 하심도 모두 성령에 의한 것인데, 그러면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시냐 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셨던 바로 그 성령 이시라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모두 함께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을 ‘richly’ ‘풍성하게’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2) 영생의 소망
사도의 설명은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도 바울이고, 그러한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사용 하셨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 진리는 더욱 깊고 풍성해 졌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도의 문장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마지막 7절에서…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따라서, 성령에 의한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문법적으로도 명확하게 진술해 나갑니다. 그래서 7절은 목적절을 이끄는 So that 으로 이어집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진리에 의거해서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십자가의 구원을 믿은 자들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그 결과로 주어졌는데, 바로 그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상속자들로 만드는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여기에서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사도가 또한 말했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죄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이라는 신분 으로는 하나님의 상속자, 곧 합법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안해 내신 복된 신분의 세탁방법이 바로 ‘칭의’라고 하는 기막힌 방식입니다. 바로 그 신비한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는 놀라운 진리가 오늘 7절 첫머리에 이렇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의 은혜’ 곧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 혹은 의롭게 됨을 얻는 것, 좀 더 교리적으로는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본래 의인이 아니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얻는 영적인 상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 곧 진정한 메시아, 진짜 구원자로 믿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인’이라는 신분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할 ‘후사’ 곧 하나님의 법적인 자녀가 되었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사람에게 놓여 있는 가장 절망적인 일은 ‘죽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흐름 속에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늘 대함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늘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실천합시다.
(2) ‘물질의 결핍과 그에 따르는 일상적인 염려와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기업을 상속할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더욱 그 진리를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합시다. 또한 그 진리를 경험하는 묵상과 깊은 기도를 실천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토요일은 6시부터 ‘시편읽기와 해설’에 이어서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