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6:1~9/감사의 신앙고백(2)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감사의 신앙고백’이라는 시리즈 설교의 서론에 해당되는 설교로서, 성경이 말하는 감사의 미덕을 실천하는 진정한 기반이 무엇인지를 해설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이번주는 설교녹화를 하지 못해서 설교원고 전체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A. 들어가면서
<예화> 헬렌켈러의 감사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헬렌 켈러의 수필에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 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 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 싸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이 3일 동안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B. 본문강해
1. 감사의 기반
여러분, 방금 언급해 드린 헬렌 켈러는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결코 3일 동안 만이라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 가정 속에서도 그녀는 3일 동안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자신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주 말씀을 기억해 보시면서, 답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생후 19개월 이후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 버린 후,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절망 속에서도 헬렌 켈러의 이 위대한 감사의 고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녀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자신의 생애 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불행 속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성령의 중생케 하심으로 열리게 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또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렐루야!!
2. 본문의 구조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시대에 경험 했던 한 시인의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는 26절의 매 절마다 ‘감사하라’는 명령이 먼저 나오고, 그 감사의 이유인 ‘그 인자 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하는 고백이 후렴구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댓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26절 전체에서 시인이 깨닫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1절에서는 오직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2절과 3절에서는 다른 신들이나 왕들 과는 비교가 불가한 ‘하나님 자신의 뛰어나심’에 감사하라고 외칩니다.
셋째로, 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홀로 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이’ 에게 감사하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 큰 기이한 일들을 열거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Great wonders’ ‘큰 놀라운 일들’ 중의 첫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 였는데, 5절부터 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은 ‘애굽의 장자를 치셔서 애굽을 탈출하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셔서 통과하게 하신 일’,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 시키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일’, ‘큰 왕들을 치셔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일’ 등 입니다.
이것들을 교리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하나님의 천지창조, 하나님의 구속과 언약의 성취 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라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3. 감사의 신앙고백: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
자, 그럼 이제 본문 1절로 들어가서, 시인처럼,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의 신앙고백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하시다’ 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좋았더라’ 하는 말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토브’ 라고 합니다. 특별히 여섯째 날에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는 ‘it was very good’,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그처럼 매우 좋았다고 한다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분, 곧 선한 분이실까요?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절대자이신, 곧 신성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우리와 같이 제한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는 합니다.
아니, 어느 때에는 예를 들기도 마음이 참담 하기는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진리와 갈등이 되는 측면도 이 세계의 역사와 우리 개인의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수 없이 많은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참혹한 전쟁과 자연의 재해를 허락하셔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가져 가시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도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과 사고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왜 이 세상에 가득한 악을 척결하시고 악인들을 벌하지 않으시는가? 등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지를 두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만약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매우 좋은 상태로 지속이 되었다면, 그렇듯 불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 일들은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이 가득한 그 악들에 대해서, 어떠한 타협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대로 다루셨다면, 이 세상은 이미 멸망하고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천지만물과 모든 역사에 작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두 번째의 설명은 이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신앙의 측면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이 ‘선하심’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자’ 혹은 ‘불쌍히 여기신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을 발휘 하셔야 할 대상, 곧 불쌍히 여기심을 받을 처지에 놓인 대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loving-kindness’, ‘어질고 사랑함’ 이라는 뜻을 지닌 하나님의 인애하심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감사해야 할 위대한 제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타락했기 때문에, 악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고통 하는 인간자체를 불쌍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그냥 불쌍히 여기시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약의 많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보이시면서, 특별히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지시고 사랑이 많으신 신적인 본질을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마디로 ‘복음’ 이라고 합니다만..
우리에게 그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또 그 소식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 복음을 깨닫고 경험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고백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임을 보았습니다. 헬렌 켈러는 죽을 때까지 그녀의 소원대로 결코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연상하면서, ‘아름다운’ 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C. 실천적 적용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 감사의 계절에 농도 짙은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이미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묵상해 봅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숙고해 봅시다.
혹은 어거스틴과 같이 어렸을적 부터 지금까지의 참회록을 한번 써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중한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고 지금까지도 인내하시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푸셨던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다면, 그 성품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거나 충만해질 것이며, 그 사랑으로 가득해진 마음으로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묵상가이드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를 다시 듣거나 '한 주간 주일 메시지 묵상'을 읽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이나 경건한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