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2)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로서 지난 주일의 개론적인 해설에 이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를 ‘육신의 안목’과 관련해서 강론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랑하면 한다
우리는 지난 주에 이미 매우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하면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따르는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거두 절미하고, 하나님께서 사랑 하셨기 때문에 하신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일이었습니다.
(2) 빗나간 사랑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빗나간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큰 명령을 받고 있는대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인간이 오히려 자기를 더욱 사랑하고, 그 불신앙 적이고 부정적인 자기 사랑의 불을 더욱 타오르도록 하는, 마치 신나와 같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매우 비밀스러운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 입니다. 바로, 이 죄라고 하는 가공할 만한 결과로 인간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결코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빗나간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빗나간 사랑의 실체
그러면 이 빗나간 사랑의 실체를 요한사도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이라고 했고, 더욱 구체적으로 그러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세 가지로 정확하게 꿰뚫었으니 그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빗나간 사랑이라는 불길을 일으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라는 발화제 입니다.
(4) 육신의 정욕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어거스틴(Augustine)은 자신의 전 삶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남긴 ‘고백록’ 이라는 참회의 책에서, 사도 요한이 말한 이 3가지가 영혼을 병들게 되는 원인이라고 썼습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정욕 중 가장 절제하기 힘든 것이 성욕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깨어있을 때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한 성욕이 꿈속에서는 절제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몽중에는...내 마음과 육체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커서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실제의 인물을 보고도 하지 못할 짓을 몽중에 있는 나를 설득하여 하도록 한다 ”
사실, ‘육신의 정욕’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육신의 감각기관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식욕(食慾)이나 성욕(性慾)은 모든 생물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적인 욕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빗나간 욕망이 되고 혹은 쾌락의 목적이 될 때는 성경에서 말하는 정욕이 되는 것이고 세상이나 세상을 사랑하도록 하는 마음의 불꽃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축적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의 정반대인 지독한 ‘자기사랑’의 길로 꿋꿋하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기사랑을 더욱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돈이나 이성이나 권력이나, 어떤 이점들을 차지할 수 있는 조건들을 방해하는 상황이 되면, 거짓을 일삼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라도 그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한 본문 말씀의 유일한 명령은 ‘세상이 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매우 무게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입시다.
(2) 설교된 말씀의 논리를 따라서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해 보고,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실제적인 경건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그러한 일을 실제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감정을 일으키도록 하는 일을 묵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적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실천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