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4)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이생의 자랑’이 무엇이며, 그것에 빠지지 않으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시리즈 주제에 대한 묵상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 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누구이든지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떠한 부족함도 없고 매우 넉넉한 부자들 이었다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이 매우 자연스러운 세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원수 까지라도 사랑하기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곧 영적인 세계로 건너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이 세상 사랑의 불이 계속해서 타오르도록 하는 ‘돈’을 사랑하는 삶에 몰입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큰 부자 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하는 부 두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부자집의 가정에 태어나서, 또한 어떤 사업을 통해서 부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났거나, 또 다른 하나는 세상과 돈을 자신의 목표로 살다가 큰 일을 만나거나 망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사업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 돈을 에너지 삼아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욕구들을 채우면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곧 자기가 부자이고 자랑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요, 그것의 확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을 간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생의 자랑
우선, 사도요한의 표현인 '이생의 자랑’이 용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성경은 ‘the boastful pride of life’ 라고 헬라어 원문을 비교적 더 잘 번역을 했습니다. 원문이나 영어성경은 좀 더 부정적인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서 획득하게 된 물질이나 명예에 대해서 과대 평가하여 스스로 자랑하기도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혹은 좀 더 단순 하게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남보다 치켜 세우면서 자랑을 떠는 것’을 말합니다. 자랑하는 것이 꼭 소유하고 있는 돈이나 물질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태도, 혹은 어떤 성과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과대하게 포장해서 뻐기는 그런 말이나 행동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3) 이생의 자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이 세상에 가득차 있는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이 허세와 사실과는 다른 과대한 자기포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과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와의 정상적인 관계,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그들을 계속해서 성장 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어서 죄가 개입되는 방식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순종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담 성장 프로젝트’라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인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천로역정에 등장했던 ‘세상지혜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정상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도, 곧 자신과 온 세상에도 유익을 끼치는 좋은 의미에서의 자랑 스러움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하는 ‘자기를 자랑하는 지혜’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이것이 더욱 부정적으로, 그리고 더욱 더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역병처럼 번져져서 자신보다 똑똑한 것 같고, 자신보다 더 잘난 것 같이 보이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재껴 버리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말과 행위의 가장 밑바닥에는 ‘자기사랑’이라는 경향성이 강력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4) 사도요한의 경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도 요한의 이 명령을 받고 있는 대상이 믿는 사람들이라는 데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말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그리고 이 고귀한 주님의 교회 안에서도 그 누구도 제외없이 이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이러한 종류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 보다 나아. 내가 너 보다 똑똑해. 내 생각이 너 보다 더 옳아. 내가 너 보다 일처리를 더 깔끔하게 해” 심지어, “내가 너 보다 돈이 더 많지. 내가 너 보다 신앙생활을 더 잘하잖아”
그렇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습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법’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의 ‘이생의 자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을 안락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재료들과 에너지들을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 하나님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는 속삭임이요, 이 세상에서 좀 더 여유있게 살면서,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삶의 우선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되도록 하는 경향들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주신 복들을 적절하고 균형있게 누리면서도 매사에,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게으르고 나태하게,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삶을 살게 되면,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정욕 들에 빠져서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성경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경험이 가진 유일하고 강력한 해결책은 자기사랑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부인’ 이라는 성화의 교리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고, 더욱 경험하고 싶은 ‘거룩한 욕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기도하는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이생의 자랑, 곧 자기를 사랑하려고 하는 생각과 삶의 방식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다시 확신되고 그 진리로 인한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 보다 낫다’는 생각이 ‘You are better than me’ 라고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더 낫다고 확신이 든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를 사랑해. 그래서 나의 나음으로 그의 못함을 채워줘야해’, ‘내가 돈이 더 많으니까 이것으로 궁핍한 지체들을 채워줘야지’, ‘내가 더 많이 배웠고 똑똑하고 일도 잘 하니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집사님들과 장로님을, 그리고 목사님을 세워 드려야지.’
그러한 일을 우리는 ‘자기부인’ 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일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온 세상에게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자기를 부인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우선, 이 교회 안에서, 우리의 소그룹 안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성취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영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입니까? 아니면,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것들 중의 하나, 혹은 몇 가지들 입니까?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해 봅시다.
(2)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 보이거나 낫게 평가받기 위해서 자신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말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자기사랑에 빠져서 ‘이생의 자랑’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러한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낮추는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자기부인,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지속적으로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