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1)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넓은 의미에서 샘솟는 교회가 추구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 대한 두 번째 단계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 설교는 이 시리즈의 개론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무엇인지를 강론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랑의 기원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직접적인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이해한 무수한 사랑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세계와 거기에 속한 사람들과는 전혀 그 기원이 다른 신앙의 세계, 곧 영적인 세계,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세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또 하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앎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부정적인 예를 들어서 죄송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코비드 19 이라고 하는 이 바이러스 역시, 처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9년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에서 처음 확인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가장 최초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에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논리로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처음으로 시작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답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고 했으며, 그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이 세상을 창조 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사와 인간, 그리고 이 세상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 했을 때에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셨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공산주의자들처럼, 거짓된 이론에 세뇌된 결과가 아닙니다. 결단코, 어떤 억압이나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는 가운데, 인간의 가장 깊은 곳, 곧 인간의 본질인 영혼이 거하는 마음 안에서, 오직 성령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말할 수 없는 자유함 이라는 자궁에서 잉태되어서 출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곧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잣대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건강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한 진단은 이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진단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라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하면 우리 각 개인의 영적인 상태가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살고, 타고, 놀고 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어디 에리조나 사막에 동굴을 파고 수도승으로 살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그것들을 사용하고 때로는 누리되 ‘사랑하지는 말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침내,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그 아래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 때에는 16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정욕, 자신의 눈이 보고자 하는 정욕,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 자랑하고자 하는 정욕 등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치과 삶의 방식 아래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마음과 삶 안에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에 대한 정욕들은 모두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숙제요, 구체적인 적용점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것도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찬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사랑 아래에 복종시키게 됩니다. 그러면,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삶의 가치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가장 뚜렷한 증거인 두 가지의 묵상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 봅시다.
‘나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2)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과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의 부정적이고 죄악된 것들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설교자의 권면처럼, 그것들과 그것들에 의한 생각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치에 복종시키고 있는지 기도 속에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