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3:14~18/사람을 사랑하는 삶(2)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두번째 설교로서, 우리의 구원과 형제사랑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형제사랑을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 본문을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형제사랑은 구원의 열매
사도 요한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께 들었던 진리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죄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그 뿌리 부터가 죄악 되기 때문에 그 나무에서는 죄와 악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나무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9가지 열매와 반대되는 악한 9가지 열매를 맺게되지 않겠습니까?
사랑이 아니라 미움, 희락이 아니라 슬픔, 화평과 아니라 불화, 오래 참음이 아니라 쉽게 원망함, 자비가 아니라 무자비한 복수, 양선이 아니라 악함, 온유가 아니라 분냄, 충성이 아니라 불충함, 절제가 아니라 방자함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바로 그러한 논지로 몇 가지의 진리를 이렇게 열거합니다.
첫째, 한 사람이 형제를 사랑하는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인데,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요약을 해보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에 속했다는 것을,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제자들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남기셨었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가장 본질적인 교훈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실천은 결코 율법적이고 단지 윤리적인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의 뿌리는 철저히 신학적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항상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형제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항상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과 원동력에 대해서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요절인 16절 말씀을 다시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그것도 그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영원한 능력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십자가 입니다.
(2) 어떻게 형제를 사랑할 것인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위하여 마땅히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 중 누구든지 소문난 부자는 아닐지라도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주변에, 그리고 자신의 친족들이나 교회의 지체들의 궁핍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보고 알게 되어서 도와 줄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을 닫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저는 이러한 면이 진리의 절묘한 균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땅히 여길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으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생겨날 때에도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닫을 수도 있는 자유로운 의지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한 일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랑의 실천이 최대한 자원함과 진실함과 행함으로 이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또한 그러 하셨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그 일을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은 결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형제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지 생각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더욱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형제사랑을 실천하기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샘터모임에서 함께 나눠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