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16~21/사람을 사랑하는 삶(1)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창조의 목적-여호와를 경외하는 자-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명을 지키는 자-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삶** 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스텝의 주제에 대한 개론적인 말씀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상이 되어야 할 주제에 대한 요약
우리는 지금 한 사람, 혹은 한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담론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그리고 어떠한 학문이 ‘이 세상의 천지와 만물이, 그리고 그것의 클라이막스로 지어진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지 못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여러분과 함께 1년여가 넘게 빌드업해온 meta-narrative, 곧 거대한 담론을 다음 몇 가지의 질문과 답의 형태로 다같이 다시한 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항상 첫번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이 천지와 만물이, 그리고 그 가장 중심에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질문과 대답 속에서 두 가지의 가장 위대 하고도 거대한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런 생각없이, 즉 아무런 계획과 목적이 없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완전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며, 첫번째 아담과 함께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곧 탈선한 열차가 제 궤도에 들어서서 본래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고 믿은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보는 것이 바로 복음의 큰 숲을 보는 탁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항상 탈선해 있는 기차와 같아서 우리 존재와 삶의 올바른 궤도에 들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으며, 고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곧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삶은 결코 불가능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의 세번째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설교시리즈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인정함을 받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 주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그 다음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랑하는 삶’에 대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2)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본문은 사랑의 사도인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에 대해서 매우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만 대표적으로 두 구절만 열거해 본다면, 16절과 19절 말씀입니다. 16절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9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러니까 첫째로, 우리가 사람, 혹은 이웃, 혹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그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지적이고 경험적인 고백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곧 하나님 안에 거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적용>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실천이 꼭 필요!!
-묵상의 습관을 들이자(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묵상을 실천하라-한 주간 주일메세지 묵상)
둘째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 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것의 증거가 이 십자가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복음 안에서는, 십자가 안에서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어서는 이 두 번째 계명이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것입니다. 최소한 원리적으로라도 말입니다.
(3) 하나님 사랑과 형제사랑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그가 가진 모든 확신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떤 반론이 가능하겠습니까?
오직 이 논지에 대해서 반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부정 해야만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배반한 인간에게 도리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셔서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부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찌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말 장이가 되고,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 이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적용>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힘입어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용서와 용납, 말조심, 격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영원한 기반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거하도록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지 생각해 보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 봅시다.
(2)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실천은 말을 조심하고 예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안에서 나의 언어생활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떻게 말로 실천할 수 있겠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