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7:12~13/소망의 바다(2)-소망의 하나님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로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즉 당신의 택하신 백성의 소망이 되시는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메세지의 강해를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예레미야의 시대
우선, 오늘 우리의 본문에는 바로 ‘고난의 바다’와도 같은 자신의 시대, 자신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 하면서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야 했던 한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 였습니다. 그는 모든 역사를 주관 하시며,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자신의 선지자를 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실 때도 있었는데, 바벨론 포로의 전후 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그 곳에 정착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례미야는 가감이 없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민족주의에 빠져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거짓으로 설득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끌려 갔지만,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바벨론에게 패배할 애굽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과 대립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굽으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그러한 와중에서도 예레미야는 정치적인 계산이나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함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바다를 통과해야 하는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눈물로 호소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12절과 13절 초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 스러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본문을 직역해 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저 높은 곳에 좌정하신 한 영광스러운 보좌는 우리의 거룩한 장소, 곧 성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장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하늘로부터 임재 하기도 하셨지만, 본래는 저 하늘의 보좌가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앉으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좌는 영원하여 그 누구도,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일도 그 보좌를 흔들 수 없이 견고합니다.
둘째로, 선지자는 그 신성한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O LORD, the hope of Israel." 사실은, 이 한 마디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해야 할 위로의 메세지 입니다.
선지자는 그 소망의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소망 중에 거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소망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말하는 대로 그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실제로는 떠나 있었고, 그 하나님을 버림으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비유적인 말씀을 이어갑니다.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는 자, 곧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이름이 흙과 먼지 중에 기록이 되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그들의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게 지워지고 날라가 버리고 말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된다는 말씀과 매우 대조적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의 소망이 되시며, 저 하늘의 보좌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거하시는 소망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언제든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혹은 환경적인 것들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위기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는 지금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모든 환란의 풍랑들의 원인을 여기 있는 우리가 학문적으로, 혹은 이치적으로 모두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은 그러한 수치스럽고 위험한 결과들이 하나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표현대로,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린다면 그 결과는 결국, 죽음과 멸망일 뿐입니다. 흙에 기록될 이름 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라고 마음으로부터 소망의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나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얼마 안 있어서 심판의 바람에 날아가버릴 이 땅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는 지,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들에게 임하고 있는 고통과 고난 중에서도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거친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소망의 바다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헤험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위기와 고난이 많은 환란의 시대속에서 우리는 그것들 자체보다 소망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2)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어떠한 때에 하나님을 떠나기 쉽고 버리기 쉬었었는지 나눠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