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한 아기의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들어가면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질 한 아들, 곧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하나님께서 incarnate 하신, 즉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진 한 아기로 이 세상 속으로 오신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이나, 오신 이후로도 이 세상은 계속해서 ‘평화’를 갈망해 왔습니다.
영국의 학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버트란드 러셀은 말하기를, “인류는 역사의 93% 기간 동안이 전쟁의 시기였고, 나머지 7% 기간만이 평화의 시기였지만, 그 평화도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라고 했고, 미국의 역사학자 월리암 듀란트는 “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에 불과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소위 200여년 동안 ‘로마의 평화’시대를 일컫는 ‘팍스 로마나’의 시대는로마의 강력한 지배아래에서 큰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 라고는 하지만, 지배를 당하는 나라나 포로로 잡혀온 피지배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는 공포의 시대였고, 언제나 반란과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것과 비교해서 지금 우리의 시대를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45년 2차세계 대전 이후에, 그리고 소련과의 냉전을 승리를 이끈 미국을 중심으로 약 80여년 동안 커다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실감하고 있듯이 그렇듯 참혹한 전쟁이 없다는 것이 우리 인류가 하나님께서 본래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원하셨던 그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각자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종교, 정치, 문화적인 생각이 다른 단체나 조직간의 관계 속에서, 또한 이념이나 이권이 개입되어서 서로를 죽이는 국가간의 테러나 전쟁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가족간의 사소한 갈등 때문에, 인간관계나 돈 문제 때문에, 혹은 마약에 취해서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살해하는 뉴스를 접합니다. 이제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심지어는 별 감각이 없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 이러한 세상이 본래 하나님께서 보기를 원하셨던 세상이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에서 그냥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메여 살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이 세상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천사와 아담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의 타임라인을 가지고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역사적으로 다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하시기로 약속하셨고, 그것을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reveal, 드러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2) 한 아기가 오셔야만 하는 이유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이 한 구절의 예언의 말씀이 바로 그것들 중의 하나 입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만드셨던 세상을 미움과 살인과 전쟁으로 가득찬 타락한 세상으로 만든 원인을 성경은 ‘죄와 악’ 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죄는 감기와 같이 잠시 우리의 몸에 고통을 주고 사라지는 요인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치명적인 수퍼 바이러스와도 같은 생명적인 원인을 말합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치명적으로 더럽히고 불화와 멸망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강력한 독입니다. 그 독이 모든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영혼까지, 그리고 인간이 경영하는 모든 일들 속에 퍼지도록 한 바이러스의 숙주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가 바로 ‘한 아기’가 오셔야만 하는 이유였습니다.
(3) 한 아기
하지만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던 대로 ‘하나님의 열심’은 이제 그 죄와 악의 독을 제거 하시려는 구원의 플랜에 따라서 ‘하나하나씩, 착착’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담이 타락하자 마자, ‘여자의 후손’을 예고해 주셨고, 모든 시대에 걸쳐서, 오늘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한 아기’ 곧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불려지는 ‘진짜 구원자’ 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4) 평강의 왕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메시아는 이름하여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가르침대로 진짜 메시아는 고대의 이단들이 이미 주장했던 바와 같이 본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는데, 어느 때에 순간적으로 변화된 수퍼맨이 아니라, 본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이 세상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한 아기’로 오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자라나서 또 하나님의 타임라인의 어느 시점에, 그리고 바로 그 때에 어떤 행위를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기는 ‘prince of peace’,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무슨 일을 했길래 마침내,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졌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한 아기가 서른 세 살이 되어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면서 하신 일은 십자가의 일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곳에 가득하게 퍼져있는 죄와 악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물과 피를 해독제로 주신 일이었습니다.
오직 생명은 생명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는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임해있는 영원한 형벌과 죽음의 원인인 그 독을 제거해 주시려고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려고 ‘한 아기’로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 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래서 나타난 결과가 무엇이었길래 그 한 아기는 ‘평강의 왕’이라고 불려진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평강’ 곧 ‘하나님과의 샬롬’ 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교만한 이성주의자는 저를 향하여 속으로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담대히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제일 처음에 말씀드렸던,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미움과 불화, 싸움과 전쟁은, 심지어, 여러분 자신안에 있는 여러분도 알 수 없는 자기 자신과의 불화도 결국은 하나님과의 불화한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일의 비밀이요, 진실입니다.
그 말을 반대로 하면, 만약 이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왕으로 모신다면,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날 동안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심지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이 살아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평강의 왕’이 이 세상에 오셨고,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평화의 도구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란,
첫째로, 이 ‘한 아기’가 우리 인간의 죄와 악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 그리스도, 진짜 구원자로 믿고, 그를 자신의 왕으로 마음 속에 모셔서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요,
둘째로,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서, 그 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보, 미안해’, ‘얘들아, 미안하다’, ‘친구야 미안 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평화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아기를 보내신, 그리고 아기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께 너무나도 큰 사랑의 빚을 지었고, 너무나도 큰 favor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진정한 평강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의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 처음 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사이에 있었던 ‘평화’ 혹은 ‘평강’의 정도는 어떠했을지 묵상하면서 현재, 나와 하나님, 그리고 나와 어떤 사람 사이에 평강을 누리고 있는지 숙고해 봅시다.
(2) 이사야의 예언대로 한 아기로 오신 예수께서 나의 ‘평강의 왕’ 이시라면, 나는 그 왕의 지배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의 통치에 순종할 때, 내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하고 기도와 화해를 실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