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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6월 22일
In 교리묵상
사도행전 2:42~47 /성경적 교회세우기(5)-샘터 소그룹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초대교회의 모델에서 나타난 대그룹과 소그룹의 특징들과 그 결과들에 대하여 사도행전 본문을 강해하고 우리 교회의 대그룹과 소그룹 사역에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대그룹 사역 초대교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믿는 사람들이 성전에 대그룹으로 모이기도 하고,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2장 초반부의 기록처럼, 베드로 사도의 능력있는 설교를 통해서 믿는 자의 수가 삼천이 더해지면서, 다함께 모이는 교회의 규모가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일 후에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기는 하지만, 대그룹으로 모인 교회는 42절의 말씀대로 크게 네 가지의 일에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것은 차례대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일, 서로 교제하는 일,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경적인 지지를 받는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 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새로운 샘터모임을 포함해서, 교회의 모든 사역들 중에서, 항상 우선적이고 우의적인 교회의 일이어야 합니다. 설교의 내용을 ‘sermon’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성경적이요, 신학적 이어야 하며, 또한 설교하는 행위를 ‘preaching’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성령의 능력을 힙입어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네 가지의 일과 함께 초대교회 전체가 매우 특별하게 실천했던 또 한가지의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2) 소그룹 사역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또 한 가지의 매우 중요하고도 은혜로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주제인 ‘샘터 소그룹’이 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게 다 같이 모이기를 힘 썼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모이는 것도 힘썼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우선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도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에서는 더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샘터 모임 설명> 새롭게 시작할 샘터모임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을 섬길 목자들 모두는 앞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어려움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 이라는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5주에서 6주에 한 번씩 저녁을 준비하게 될것 같은데, 저와 우리 소그룹 리더들은 그 일이 정말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준비되고 함께 먹는 ‘사랑과 교제의 식탁’ 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지혜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음식의 맛이나 종류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 샘터 식구들의 힘겨웠던 한 주간의 삶을 뒤로하고 ‘기쁨’을 쉐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진솔한 마음으로 음식을 즐기고 우리 샘터 식구들의 관계를 즐기는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준비하는 비용이나 수고의 어려움이 예상 되기는 하지만, 그 수고와 섬김이 가져다줄 유익이 더욱 클 것이기에 우리가 함께 이 아름다운 식탁의 교제를 위하여 서빙 한다면 우리의 샘터모임이 더욱 풍성해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집에서 했던 일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 일은 이 두 번째의 일을 위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식사하고,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을 나누면서,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도 나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가페 만찬과 우리의 삶의 나눔과 함께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여 서로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거룩한 모임’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초대교회가 그렇게 대그룹으로나 소그룹으로 신실하게 사역을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좀 더 직역을 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고 했습니다. 그들의 모임과 그들의 사랑의 교제에 매력을 느꼈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 없이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우리들의 수고와 헌신을 사용하시고, 우리 성도들 상호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사용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사용하셔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를 더하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샘터 모임에서 이러한 구원의 역사도 간절히 기대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먼저는 우리 성도들 간의 사랑과 교제를 보시고,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찬미와 사랑을 보시고, 또한 이 지역사회를 향한 봉사와 구제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샘솟는 교회가 다같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사역들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는 일,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지, 그리고 목회자를 비롯한 우리 모든 지체들이 그 일에 마음을 드리고 있는지… (2) 우리 샘솟는 교회의 소그룹 사역은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쁨, 삶의 고통, 사명’ 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 나눈 일들이 응답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를 더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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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6월 15일
In 교리묵상
골 1:21~25/성경적 교회세우기(4)-헌신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영적인 유기체’ 로서의 교회, 곧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헌신’을 통해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을 골로새서 본문을 통해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골로새 교회의 자라남과 구원의 목적 사도 바울은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주제와 같이, 1장의 초반부에서 자신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의 목회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열매를 맺어 자라났다고 기쁘게 증언하고 있고,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의 일을 행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이렇게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18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 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성경은 우리가 받은 구원도 무척이나 값진 것이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멤버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을 세우셨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그것의 궁극적인 마스터 플랜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더욱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로 인하여 불화하게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해지고 그 하나님과 충만한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는 것,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를 통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 곧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신 가장 장엄하고 영광스럽고 위대한 목적은 첫째로, 이 세상과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피스메이커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 곧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게 돌려야할 마땅한 명예와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헌신의 필요성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위대한 일을 위하여 놀랍게도 심히도 연약한 인간의 헌신을 사용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에 관한 간증 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21절의 말씀처럼, 불신앙과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겨지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의 지체들도 세우려는 원대한 계획 속에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하며 간증합니다. 사도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먼저, 저 같은 복음의 일꾼들을 숙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오늘의 주제구절인 24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의 이 표현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으로서 그 일을 할 때에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여러가지 결핍과 핍박, 그리고 육체적이고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모든 고통과 고난을 연약한 육체를 지닌 자신이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러한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하고, 그 고난이 단지 자신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기 때문에,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따르는 고난 이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에 그 고난을 채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중심과 삶을 ‘헌신’ 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여러 크고 작은 공동체들, 또한 매우 규모가 큰 공공기관이나 한 나라를 올바르게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샘솟는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여기에 그렇게 헌신해 오신 산 증인들이 여기에 계십니다. 저는 그 모든 면들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나,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릴 때에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주축이 되는 멤버들이 이제 나이가 드시고 예전과 같이 엑티브하게 헌신하기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아주 젊지는 않지만, 비교적 젊은 복음의 일꾼을 이 교회에 보내주셨으니까 우리 장로님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뒤를 이어갈 여기 계시는 비교적 젊으신 집사님들과 비교할 수 없이 젊은 일꾼들이 그 바통을 물려받아 선배님들의 기도와 격려를 받으면서 저와 함께 헌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서 자라나고, 온전한 사람들로 세워져 갑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로 부르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마땅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 일입니다. 우리 샘솟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과 우리 교회가 세워져 가고 있는 그 위대한 목적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한 영혼이 구원되는 일에 헌신하도록 합시다. (2) 우리 샘솟는 교회를 위하여 오랜 동안 헌신하셨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격려하고 우리의 선배들처럼 헌신하기를 다짐해 봅시다. 또한 우리와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온전히 세울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자라나고 함께 헌신할 일꾼들을 또한 보내주시기를 간구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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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6월 07일
In 교리묵상
에베소서 4:11-15/성경적 교회세우기(3)-자라나는 교회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영적인 유기체’ 로서의 교회, 곧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어떻게 자라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에베소서 본문을 강해하여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성도의 온전함과 봉사의 일을 하게 함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그 자라남의 정도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즉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여러분 각자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 있는 거룩한 커뮤니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커뮤니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 거룩하고 복된 우리 샘솟는 교회 공동체가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무엇보다도, 우리 샘솟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인 제가 목회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사 자신이, 그리고 성도들인 여러분들이 11절의 말씀처럼, ‘그가’ 곧, 이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의 목사로 삼으셨다, 원어적으로는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한 목사를 지역교회의 목회자로 주신 분이 바로 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목사 자신도, 그리고 여러분들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과 저 사이에 인격적인 목양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상호간의 약점과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가 우리를 목자와 양으로 만나게 해 주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관계속에서 한 목사가 목회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잘 하는게 무엇이냐 하면 그처럼, 영적으로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잘 빌드업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영적으로 구비시키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됨 둘째로, 우리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지난 주에 잠시 말씀드렸던 것처럼, 13절과 14절의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는 성도를 잘 구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성숙한 사람들로 자라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되기를 힘쓰십니다. 오직 마음을 그 일에 함께 기울입시다. 매 순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사용하고, 그를 더욱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일을 계속합시다. 우리는 한 예배당에 이렇게 대그룹으로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할 때 뿐 아니라, 샘터 모임처럼 소그룹으로 모여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에도, 그리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좀 더 깊이가 있는 교리와 성경공부를 함께 할 때에도 ‘예수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전진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 교회는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3)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자나나기 위해서는 15절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도는 교회가, 곧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두 가지의 요소, 곧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요소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진리와 사랑’ 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 안에 거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 그 분과의 사랑의 교제에서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묵상의 의무와 기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마음 속에 충만하지 않고서 그가 말하는 진리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나 권면이나, 자신의 주장은 의미는 있지만 거룩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안에 거하면서도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고 그 진리를 말하는 일, 곧 전도의 일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범사에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한 인간 설교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가슴엔 그리스도의 불과 같은 사랑을, 머리엔 찬란한 진리의 빛을…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러 하셨기 때문이며, 그 분이 오신 이유가 우리의 무지하고 어두운 지성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며, 우리의 냉랭한 가슴에 사랑의 불을 던지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열렬한 기도와 묵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더욱 드리십시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불붙은 진리를 서로에게 말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하여 말하십시다. 성경은 분명히, 그러한 일을 해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에게까지 자랄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성경대로 교회는 자라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을 잘 구비시켜서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수께서 보내주신 목사가 그의 직무를 잘해야 합니다. 목사 자신이 목회에 대한 마음과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 목사를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격려와 협력은 또한 어떠한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계속해서 정진하는 샘솟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 사도는 교회의 자라남에 있어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믿음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고, 목회자가 권면하는 주일설교를 한 주간 동안 묵상하며, 깊이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러한 일들을 신실하게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3)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체들인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참된 것, 곧 진리를 서로에게, 그리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깊은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고, 성도들 상호간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실천을 지속하도록 합시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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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5월 31일
In 교리묵상
에베소서 4:11-15/성경적 교회세우기(2)-영적인 유기체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두번째 설교로서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에베소서의 성경본문과 함께 사도신경,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교회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기체성 사도는 오늘 본문 4장 15절을 비롯해서 다른 두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머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1장 22, 2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스림’, 곧 ‘통치’, 혹은 ‘주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것은 그의 몸인 교회를 주관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그리고 그 교회의 각 지체들인 우리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신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샘솟는 교회’라고 하는 한 지역교회의 성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적 교회, 곧 보편교회의 한 지체가 된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들의 소유하고 계신 자랑스러운 그 어떤 멤버십보다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1년에 몇 백불, 혹은 몇 만불을 내고 리뉴를 해야만 하는 멥버쉽이 아니라, 한번 가입되면 영원한 멤버십을 보장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그니처가 있는, 헤븐리 다이아몬드 멤버십입니다. (2) 교회인 지체들간의 유기체성 이 첫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하고 기반이 되는 것이지만, 오늘 저는 마지막 이 두 번째 요소가 목회적인 면에서 또한 중요하고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와 우리 각자의 유기체성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머리이심을 고백하는 우리 각자가 상호적으로 또한 유기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55문과 그 답이 그것을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첫째, 모든 성도들은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들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각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각 성도들, 곧 그 몸의 지체들은 ‘서로 교통’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제가 여기에서 1장 23절을 한번 더 가져와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교회가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충만함’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 곧 창조주시요, 전능자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함, 그것 자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놀라운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서로 교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놀랍게도 가장 표준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들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세우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부요와 모든 은사들을 그의 지체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레스토랑’에서 all you can eat every single day!! 이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은혜요, 복음입니다. (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성경의 가르침은 언제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만 합니다. 특히, 바울은 언제나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구원의 교리를 잘 설명합니다. 특히 에베소서 에서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 교리의 결과로 만들어진 교회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은혜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행해야 할 일들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그러한 점이 바로 성경의 건강한 균형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충만함 속에서 능동적으로 무엇을 행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통’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각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11절,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물론, 어떤 직분들은 성경시대와 함께 없어진 것들도 있고, 또한 어떤 직분들은 이후에 생겨난 것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직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직분이 주어지고 그러한 직분에 걸맞은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도 기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각자의 직분과 은사를 가지고 서로를 섬기는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도 놀랍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 일에 하나가 되어서 도달해야 할 지점이 무엇입니까?우리 모두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충만함 속에 있는 그러한 장성한 분량’ 까지 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영적인 유기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각 멤버들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성도의 교통’을 누리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함, 곧 그의 부요함과 그가 주시는 은사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또 그것을 성도 상호간에 어떻게 교통할 수 있을지 묵상과 기도라고 하는 경건의 실천과 관련해서 생각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교회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는 일에 있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는 정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샘솟는 교회의 멤버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주중에 많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매 순간마다 예수 그리도는 믿는 믿음과 그를 아는 일에 서로서로가 하나되기를 힘쓰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실천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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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5월 18일
In 교리묵상
로마서 1:1-7/성경적 교회세우기(1)-거룩한 공회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새롭게 시작된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로마서 본문과 사도신경,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교회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말로 번역된 ‘교회’는 그 한자어의 의미상, 그리고 표현의 한계상, 본래 교회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다’라고 할 때의 ‘교’와 ‘모임’이라고 할 때의 ‘회’ 입니다. 물론, 교회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그러한 가르침의 요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기능과 관련된 정체성 중의 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영미권에서 일컫는 ‘church’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영향으로 ‘주님께 속한’이라는 뜻을 지닌 헬라어 ‘키르케’를 독일어로도 비슷하게 ‘키르케’로 한 것의 영어발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여지는 단어가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헬라어 명사 ‘에클레시아’ 입니다. 이 말은 두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인데, ‘밖에서부터’, ‘out of(or out from)’ 라는 뜻의 ‘에크’라고 하는 전치사와 ‘부르다’, ‘to call’ 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동사 ‘칼레오’의 합성어 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다 연결시켜보면, ‘바깥에서 부터 부름을 받아서 주님께 속한 모임, 혹은 공동체’ 라는 뜻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깊은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를 우리말로 간단히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편의상,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2)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이제 그러한 이해를 가지고, 그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있는 오리지널 소스로 가보겠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성경 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 곧 교회에게 이 편지의 가장 처음 부분을 써 내려 가면서 자신의 변화된 정체성과 복음의 의미를 설명한 후에 우리의 주제인 교회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 입니다.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out from gentile’,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도 이렇게 되어 있는데,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 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 입니다. (3) 거룩한 공회 이러한 성경의 설명과 함께 사도신경이나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에는 교회를 ‘거룩한 공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고백에 이어서 ‘거룩한 공회’에 대한 고백이 나오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제 54문은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께서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전 인류로부터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영생을 얻도록 선택되어 참 믿음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를 자신을 위하여 모으시며 보호하며 보전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나도 지금 이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언제까지나 그 일원으로 남을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무엇보다도 교회는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리스도께 속하지도 못했던 우리를 ‘거룩한 공회’ 안으로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말씀 안에는 놀라운 구원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분이 경험 하셨고, 우리가 공부하고 암기하고 있는대로, ‘외적인 부르심-중생-내적인 부르심-회심’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을 조금만더 적용해서 말씀드리자면, 성경적인 교회는 반드시 이러한 참된 부르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러한 부르심의 확신과 감격적인 경험 속에서 부흥된 심령을 유지하려고 하는 참된 멤버들의 신앙고백 위에서만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 저와 여러분들은 사도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 하심을 받고, 거룩한 교회의 멤버, 곧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아들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또한 그 아들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을 거룩한 공회로 부르신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멤버가 되게 하신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모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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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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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6일
In 아침 칼럼
요한복음 1:19~34/세례요한의 증언(29~34만 읽기)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복음전도 주일을 위해서 요한복음 1장 19~34절까지의 세례요한의 증언을 핵심적으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의 핵심을 선언한 이후에 세례요한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누구이신지를 더욱 강하게 선언합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도요한과 세례요한의 연역적인 증언 이 책의 저자인 예수님의 제자, 사도요한이 자신의 복음서를 쓰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인데, 그것은 예수 라고 하는 분이 진정으로 누구 이신가를 올바르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18절 까지 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마치 하늘이 무너질듯한 천둥소리와 지지직 거리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여러 갈래의 번개 와도 같이 이 세상을 향하여 장엄하게 선언 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바로 이 예수가 창세 전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 이시다.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하여 지어진 것이다. 곧 그는 창조주 이시다. 그 안에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빛이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요한, 곧 육신적으로 예수님보다 앞서 태어났던 세례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의 정체성을 증언해 나갑니다. 세례요한 또한 예수에 대하여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인간들 가운데 거하셨다.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자신보다 앞선 것은 자신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외아들이신 아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2) 유대인들의 반감에 대한 세례요한의 핵심적 증언 “왜 세례를 주느냐?” 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세례요한은 그 질문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오히려, 한 사람에게 그들의 시선을 집중 시킵니다. “그렇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이시다.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이신지,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는 것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자이다. 즉 나는 그의 노예가 될 자격 조차도 없는 자이다.” 그러면서, 그 날에 세례요한의 증언은 지는 해와 함께 마감이 됩니다. 그리고는 그 이튿날이 되었는데, 어제 세례요한에 의해서 소개되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 세례요한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눈 앞에 그 신발끈을 풀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 그 분의 샌들이 보였습니다. 그 분의 부드러우면서도 엄위하신 모습이 세례요한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례요한의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에 크게 감동되어서 위대하게 외쳤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미리 보내신 하나님의 메신저, 세례요한은 분명히 말하기를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신 그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는 그런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모두는 죄인들 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죄를 제해 버리기 위해서,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져버린 인간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놓여있는 그들을 다시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제물이 되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계셨으니 그 분이 바로 세례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감당하지 못할 진실은 그 분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무지한 자들이 일컫는 탁월한 도덕선생이 아니라, 4대 성인이 아니라, 수퍼맨도 아니라, 세례요한의 증언대로 자신보다 6개월 늦게 이 땅에 태어난 자신이 사촌 동생 이었지만,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곧 선재 하셨던 하나님 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론적으로, 세례요한은 인간의 입으로 증언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로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이시다” 사실, 세례요한은 자신도 그가 누구 이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는데, 자신을 그곳에 보내셔서 물로 세례를 베풀 라고 명령하신 그이, 곧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 인줄로 알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봤다고 하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의 위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그것을 본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분명히 십자가에서 세상죄를 자신의 몸으로 대신 지시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시요, 진정한 구원자라는 것을 증언하시며, 오직 그 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그 분께 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또한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의 목적이 경건한 자,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고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증거된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영적인 경험을 사모합시다. 우리의 기도와 묵상 속에서 세례요한이 증언한 예수를 생각해 보고 그 분과 교제 하기를 힘씁시다. (2)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 거룩하신 영을 순결한 마음과 삶의 방식, 그리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또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순결함과 순종이 깃들도록 노력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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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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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2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10~12/예수님과의 산행(8)-의를 위하여 핍박은 받는 자의 복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여덟 번째 설교로서 ‘의’가 무엇인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 약속된 복이 무엇인지를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의’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의’ 입니다. 헬라어로눈 ‘디카이오쉬네’, 영어로는 ‘righteouseness’ 입니다. 이 단어에 해석들이 매우 많지만, 가장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오늘 우리의 본문 안에서 보자면, 이 ‘의’라고 하는 것이 이 말씀을 직접 하고 계시는 예수님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과 11절 말씀의 앞부분을 집중해서 보면, 예수님께서 10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다음절인 11절에서는 곧바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말라기 4:2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거기 ‘공의로운 해’가 바로 ‘the sun of righteousness’ ‘의의 태양’ 이신 진짜 구원자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의 뜻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이 분이 바로 ‘의의 근원’ 이라는 것입니다. 그 의의 태양의 광선이 비춰지는 자, 교리적으로 말하면 거듭나서 그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께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는자, 법적인 의를 양도받는 자가 의인이 됩니다. 오직 그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의 자체 이시고, 그 빛을 비추셔서 우리같은 죄인들을 의인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제2위격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2)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두 번째로 그러한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다는 것은 11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거짓된 증언으로 악한 말을 듣게 되는 것이 바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생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은 로마인들이나 기타 이방인들보다는 자신의 민족이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모세의 율법과 정결의식에 자신들을 깊이 헌신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훨씬 더 예수님을 욕하고 박해하며 심지어 거짓증언을 사주해서 예수님을 이방인인 빌라도의 손에 넘겨서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실, 군중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며, 그들의 바람이 담긴 종려나무의 의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승리의 입성이 아니라, 오히려 패배와 죽음을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권력의 교체와 승리에 도취되어서 종려나무를 쥐고 흔들었던 그들의 손에는 겨우 5일 만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예수께 던졌던 돌이 쥐어져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라’ 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역설의 연속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죄악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룩한 하늘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실천적인 결단은 분명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우리 각자의 몫에 태인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우리 각자의 예루살렘으로 입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욕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고 우리를 거슬러서 악한 말을 내뱉는 세상의 한 복판입니다. 각자 저마다의 생각과 자신의 의로 가득차 있어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주면 그 옛날의 선지자들에게 행했던 것처럼, 우리를 비웃고 우리를 무시하는 바로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욕을 먹든, 박해를 받든, 거짓증언으로 악한 말을 듣든지, 그것을 견디면서, 그리고 그들을 더욱 사랑하면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종려주일의 참된 의미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의’를 얻게 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나의 죄를 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2)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이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삶이 내게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물리적, 정신적, 물질적 박해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3) 우리에게 의를 주신 이유는 의롭게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난 주간에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돌아보는 실천을 한다면, 이 땅에서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하며, 저 하늘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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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05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9/예수님과의 산행(7)-화평케 하는 자와 그의 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일곱 번째 설교로서 화평케 되는 것과 화평케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에게 어떠한 복이 있는지를 꼼꼼히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불화의 원인과 진짜 피스메이커 이전과 동일한 논리로, ‘화평케 한다’는 것은 반드시 ‘화평케 해야 하는 두 관계’, 곧 불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거의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서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 하고도 가장 위험천만하게 깨뜨려져 있는 평화는, 곧 불화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불화’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 곧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두 가지 면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는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러한 하나님과 인간의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관계를 파괴했던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스케이커로 살아서 그에게 약속된 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먼저 ‘피스케이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진실이 old covenant 와 new covenant, 옛 언약과 새 언약, 곧 신구약의 주제이며,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드려진 인간의 죄를 해결하셔서 하나님과의 평화를 복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the authentic peacemaker, 진짜로 화평케 하시는 그 분이 바로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할렐루야!! (2) 어떻게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가? 첫째로, 가장 먼저, 그 사람 자신이 화평케 되어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평케 함을 주셨을 때, 그 자신 또한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화평케 함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담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화가 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이며, 그렇듯 화평케 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피스메이킹은 두 말할 나위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불화를 화평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지역교회로서 우선적으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대로 온 세계를 향한 선교의 사역 에도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각 정부와 기관들 속에 최대한 많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계속해서 진리를 외치며 가르쳐서, 거룩한 씨, 곧 화평케 하는 자들을 이 땅에 심어야 합니다.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유능하고 거룩한 화평케 하는 자들을 좋은 정치인들로, 좋은 재판관들로, 좋은 관료들로 이 세상에 보내야 합니다. (3) 화평케 하는 자의 복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이유가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질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양자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인 삶 속에서 그가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곧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실제로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나게 될 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사람들 조차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한 백부장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그 어떤 영광보다 가장 위대하고 복된 영광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각자는 진정으로 진짜 피스메이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는지를 되물어보고, 현재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평화와 관계의 충만함 속에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 봅시다. (2) 혹시 주변에 불화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된 그들을 화평케 하는 원리를 확신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평화의 복음, 곧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봅시다. (3)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이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로 살아가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인정을 받도록 하나님께 의탁드리고 그들의 신앙과 삶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지혜를 구하며 돕도록 합시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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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3월 21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8/예수님과의 산행(6)-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여섯 번째 설교로서 마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는지,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은 무엇인지를 교리적이고, 경험적으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마음이란?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는 크게 두 가지로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첫째는 ‘누스’ 라고 해서 주로 영어의 mind, 곧 지성적인 활동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고, 둘째는 ‘카르디아’ 인데, 오늘 본문을 비롯해서 신약 성경에서 157회가 사용 되고 있고, 이 단어는 ‘누스’ 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한 사람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행위의 원천이 되는 인간의 중심부를 가리킵니다. 즉, 한 사람이 거듭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흘러들어가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또한 ‘카르디아’ 라고 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연결될 때도 사용 되는데, 거듭나기 전에 인간의 내면 중심부에 죄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 악한 생각이 나오고 불순종하고 회개할 줄 모르며, 굳어져서 믿지 않으며, 우둔하고 어두워져 있는 곳을 말합니다. (2)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지는가? 예수님께서는 이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을 보는 것’과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말 ‘청결함’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카타로이’(katharoi)라고 하는 단어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 혹은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에 불순물이 들어와서 ‘추잡함’의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오염이 되어서 더러워질 수도 있을 가능성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종교의 매우 독특 하고도 신비한 요소입니다. ‘가변성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매우 변화 무쌍해서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 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할 길이 없게 되는 신비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요, 그 중에서도 이미 구원을 받아서 마음에 가득한 죄의 사함을 받고, 순수하고 깨끗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마음에 불순물과 오염물질이 스며들어서 다시금 청결함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마음을 지닌 것이 또한 신자의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가 중요하고, 그것을 알았다면 그 방법론을 가지고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가장 디테일한 최고의 교사요, 성경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입니다. 그가 자신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의 목회를 돕기 위해서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5~10절 정도까지의 말씀입니다. 5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디모데의 목회현장에 놓여 있는 대적이 나오는데, 믿음에서 떠나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곧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이론으로 가져왔던 구체적인 혼란은 ‘결혼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적이고 이교적인 비진리와 거짓, 그리고 그런 불순한 이론으로부터 나온 행위들이 얼마나 교회를 어지럽게 할 수 있는 지를 간파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고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 무이한 ‘어떻게’를 제시합니다. 그것이 디모데전서 4장 5절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러면서 사도는 6절부터 10절에서 ‘경건’ 에 대해서 말합니다. 결국,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경건한 영혼의 근육, 곧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때,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청결해 집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말한 경건의 비밀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의미하며, 특별히 거룩한 묵상의 의무를 실천하면서 진정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디모데전서 3장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 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과 청교도 경건의 핵심인 묵상에 대해서 함께 배우기를 원하고 그 묵상의 본질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참회함이 늘 충만해서 마음이 청결해 지며,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적 메세지> **지난 주일 설교시간의 한계로 말씀드리지 못한 메세지를 이 곳에 그대로 적어 봅니다. 제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던 부분입니다. 여러분, 너무 좋지 않으십니까? 왜그렇습니까? 만약에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또한 제시해드린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며, 경험적인 이 구체적인 경건과 묵상의 이론과 실천을 병행 하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러한 신비한 경험들을 능히 허락하시는 분이시니까 메이비.. 그렇게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경험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하고 놀랍게 마음의 청결함 속에서 우리의 영이 지성적으로, 그리고 또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마치 깜깜한 밤에 모든 전기가 나가서 희미한 촛불을 켜 놓고 있다가 전기가 들어와서 온 집이 일시에 환해지는 듯한 영혼의 눈 뜸과 영혼의 각성과 심령의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백내장 수술을 해서 늘 침침하고 희미하던 눈이 환해지고 상쾌해 지듯이, 우리의 영혼의 눈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일년 내내, 혹은 몇년 동안 어두움 가운데 살다가, 일년에 한번 기도원에 가서, 혹은 신통한 부흥강사를 모셔다가 1년 혹은 몇년 간 쌓아 두었던 마음 속에 무엇 인가를 해소하는 듯한 그러한 신앙생활은 이제 그만 이어야 합니다. 물론, 특별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원을 찾고, 정말 영성있는 말씀의 사역자를 초빙해서 집회를 갖는 것도 좋은 일이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엑스트라 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regular base for piety’, ‘정규적인 경건의 베이스’를 잘 구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나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돕고 격려하고 함께 하려고 여러분에게 보내신 말씀과 경건을 위한 사역자 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권위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목회자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십시요. 저의 인격적이고 목회 기술적인 여러가지의 약점들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막히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넓게 가지십시요. 지름길을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신비주의 신학과 약장수 꾼들의 속임수를 피하십시요. 경건은 그렇게 만병통치약 한 병을 마시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언어생활과 구체적인 행위가 성경이 말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것들이 되는 일에 있어서 잭팟을 맞듯이 일시에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저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지기를 힘쓰십시요.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십시요. 여러분의 영혼의 눈에 백내장을 걷어버리는 명약은 ‘회개의 눈물’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십시요. 이 모든 권면은 가장 넓게는 하나님, 곧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것이지만, 좁게는 여러분들의 성실하고 신실한 노력이 협조해야 가능하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참 종교에는 항상 놀라운 균형이 있습니다. 어떤 무지한 이들은 자신들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저와 같이 성도들의 의지에 호소하는 것을 복음적이지 않고 율법적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마치 정치인들이 표를 얻으려고 국민들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아첨과도 같습니다. 자신은 복음을 외친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성도들이 별로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예수께서 다 이루셨으니 우리들은 단지 그것을 믿으면 된다고 하는 허탄한 불균형 속에서 안위를 받도록 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그것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균형잡힌 생각과 실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경건의 능력’ 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음이 청결할 것이요, 하나님을 볼 것이며,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의 몸이나 방이나 차를 정기적으로 청결하게 하듯이, 우리의 마음을 정기적으로 청결하게 하는 일은 오직 말씀과 기도속에서 흘리는 참회의 눈물 뿐입니다. 울려고 해서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주시는 은혜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정규적인 묵상과 기도를 실천해 봅시다. 2) 교회적으로 정해진 공적인 기도회에 더욱 충만한 은혜가 있어서 기도가 더 능력있어 지도록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참여하도록 합시다. 3) 한 주간 동안, 긍휼히 여기는 실천을 감당해 봅시다. 토요일에 있는 야드세일을 섬기는 이유도 긍휼사역을 실천하는 좋은 동기에서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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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5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7/예수님과의 산행(5)-긍휼히 여기는 자와 그의 복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다섯 번째 설교로서 ‘긍휼’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고, 어떻게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긍휼의 의미 오늘 말씀도 동일한 논리로 예수님께서는 먼저 ‘복되도다’ 라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복 됨을 강조 하시면서 그렇게 복된 사람들을 열거해 나가고 계시는 중인데, 그 다섯 번째는 ‘긍휼히 여기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직역해서 원문의 어순대로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복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자들은... 왜냐하면 그들은 자비, 혹은 긍휼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7절 말씀의 주제어는 ‘긍휼’ 이며, 이 단어의 한자어는 두 글자 모두 ‘불쌍히 여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긍휼히 여기는 자 그러면 우리는어떻게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강조하신 ‘자비로운 자, 곧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우리 종교의 가르침이 두 가지 면에서, 얼마나 탁월한 균형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시한 번 확신하게 됩니다. 그 두 가지 중의 첫번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수동적으로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고 하는 증표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흔적으로 남겨 주신 ‘하나님의 긍휼’ 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으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도록, 본성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불쌍한 사람들을 향하여 자비롭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게 되도록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었다는 첫번째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두 번째 지점에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숙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드렸던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수동적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본성적인 변화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균형을 잡아야 할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 동안에 우리 안에 여전히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긍휼히 여기는 삶 그래서 여기에는 또 다시, 두 가지의 해결책이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첫째는 우리 안에, 혹은 우리 밖의 이 죄악된 세상에 실재하는 ‘무자비함’과 ‘이기심’에 따르는 무정하고 매정한 삶의 방식을 물리칠 수 있는 은혜로운 마음과 그로 인해서 실제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묵상과 능력있는 기도의 필요성이 가장 실천적으로 강조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적이고 경험적인 가장 뚜렷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은 ‘자비와 긍휼의 학교’ 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무궁한 자원이 묻혀있는 십자가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의지적으로 자비와 긍휼의 실천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로운 구제, 특별히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면서 실제적인 도움을 베풀는 구제와 긍휼의 사역을 의지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4)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사람들에게 자비롭고 긍휼을 베푸는 그 사람의 마음과 실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사람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보여주는 바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이 놀라운 복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 우리의 육체를 지니고 살아갈 동안 여전히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우리의 생애 동안 그러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살아갈 때가 부지기수 입니다. 수 많은 실수와 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만약, 그러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과 우리 자신의 죄와 악함 때문에 스스로 멸망 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복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선언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다.” 얼마나 커다란 복음입니까? 특별히 놀라운 십자가의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힙입어서 정말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실천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경험했을 때는 언제였으며,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어떠한 은혜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2) 우리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 강화되며, 그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설교자는 두 개의 날개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해설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그 진리를 떠올리면서 묵상으로 되새기고 기도로 마음에 새기는 은혜로운 실천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3) 한 주간 동안, 긍휼히 여기는 실천을 감당해 봅시다. 토요일에 있는 야드세일을 섬기는 이유도 긍휼사역을 실천하는 좋은 동기에서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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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3월 09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예수님과의 산행’ 네 번째 설교로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중심의 ‘의’가 무엇이며, 그 의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졌고, 그렇게 의인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불의한 세상과 ‘의’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혹은 우리의 현재적인 삶 속에서 이 세상에 ‘불의’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경험하고 있고, 그것의 근원은 의심의 여지없이 ‘죄’요, ‘죽음’ 이라는 히든카드를 쥐고 사람들과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렇게 불의가 충만한 세상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좋은 정치제도가 마련된 지금과는 달리,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는 더욱 구조적인 불의가 넘쳤으니 전쟁이 가득했고, 전쟁의 포로들은 짐승보다 못한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한 인간의 자유와 인권, 여성의 지위 같은 것들은 아예 말을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지배와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지배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더욱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불의가 가득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그가 의인으로 인정되는 방식과 의인이라는 성질 자체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회적인 공의의 개념과는 그 출발 자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경이 말하는 ‘의’와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도록, 아니 그 보다 앞서 그가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인정되도록 하는 하나님 편에서 주도하시는 엄청난 사건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은혜로운 역사를 ‘칭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음이 ‘의인’으로 인정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챨스 핫지라고 하는 신학자는 칭의에 대해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의 가장 강력한 광선들이 만나는 초점이며, 거기서 양쪽이 완전히 화해한다. 이것은 공의의 절정이며, 동시에 같은 이유로 우주가 볼 수 있는 은혜의 절정이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자, 이제 우리는 비로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자연스럽고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드렸던대로 칭의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풍덩하고 뛰어드는 순간, 그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의 본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법적으로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자신 안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의와 거룩 하심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게 되고, 의롭게 살고 싶은 사모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는 전혀 다른 냄새를 풍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얼마나 주리고 목마르셨는지를 실제로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는 ‘의를 위하여’ 단지 한 두끼를 굶는 정도의 배고픔이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 먹지 못해서 온 육체가 너무나도 굶주려서 심히 고통하는 것 같은 ‘의를 향한 주림’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가정과 사회와 나라, 그리고 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과도 같이 흘러 넘치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이 경험했던 십자가의 일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 십자가의 복음을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헌신하게 됩니다. (3) 만족을 얻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복은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원어성경과 가깝게 직역을 하자면, “그들이 만족하게 될 것임이요”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에 가득한 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행복을 다 지니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복을 따로 추구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부의 뜻에 순종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의의 불씨를 이 땅으로 가져오셨고, 이 세상에 그 불을 던지셨습니다. 그 일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참된 행복을 위해 자신을 모두 살라 주셨습니다. 성부께서는 그를 높이셨고, 그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자들의 주시요, 왕으로 등극하셨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복을 취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땅을 차지하셨습니다. 그들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십자가 지심의 보상으로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처럼 우리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서 바치기를 다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부를 것이요,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를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기 위한 기반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 주셨는지 묵상해 봅시다. 십자가가 없이는 의인됨이 없습니다. 십자가와 나의 의인됨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의인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길이겠는지, 복음의 전도와 관련해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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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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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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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5~18/요한복음 강해③-은혜와 진리의 예수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2월 복음 전도주일을 맞이하여 요한복음 1:15~18절 말씀을 간략하게 강해한 설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하심과 그를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예수의 선재성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이미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자신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셔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해서 지어진 것이라고 선언을 하면서 이 글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서 사도요한은 또 다른 요한, 즉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던 세례요한이 외치며 증거한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육신적으로는, 세례요한 자신이 앞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그가 자신보다 앞선 이유는 세례요한 자신보다 먼저 계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계시다’, 그것이한자어로 ‘선재(先在)’, 영어로 ‘pre-existence’ 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는 예수께서 선재하셨다, 곧 그가 하나님이셨다는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한 것이었습니다. (2) 은혜와 진리의 예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충분한, 최상급의 은혜를 받도록 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바로 17절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위의 은혜, 곧 최상급의 은혜가 예수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에게 물붓듯이 부어지게 된 것입니다. 설교 중 예화로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 마리의 갈매기가 인간들의 생명을 살렸다면, 선재하셨던 예수, 곧 영원하신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셔서 자신의 십자가에서 바치셨으니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자마다 은혜를 받지 못할 사람이 없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지 못할 사람이 또한 없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그의 충만한데서 은혜 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본래 누구이셨는가?’ 와 가장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 모세와 비교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은혜와 진리’가 그를 통하여 온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를 누구로 고백하십니까? 묵상 속에서 깊이 생각하며 진심으로 고백해 봅시다. 2) 설교자는 기도 속에서 ‘오! 나의 머리이신 예수시여, 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시여’ 라는 간구 속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지 여러분도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 묵상의 재료로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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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3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5/온유한 자의 복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장~7장에 대한 일련의 강해설교로서 ‘예수님과의 산행’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였고, ‘온유하다’ 는 것은 무엇이며,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복이 있도다 온유한 자들은...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을 그의 형제들인 아론과 미리암이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모세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비방을 했는데, 3절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그들의 비방과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온유하게 상대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셋을 회막으로 불러 모으셔서 모세의 충성됨을 인정해 주시면서 미리암에게 나병이 들게 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모세는 또한 그 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영어번역 성경은 ‘meek’, 혹은 ‘gentle’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온순한’ ‘온화한’ ‘정다운’ ‘관대한’ ‘친절한’ 뭐 이렇게 까지 의미역이 가능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단어들을 듣기만 해도 온유한 품성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은 성경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이 팔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키워드로 삼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관점에서, 즉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영적인 측면에서 이 ‘온유하다’는 어휘를 이해한다면 이 ‘온유하다’라고 하는 말은 단지, 인간의 자연적이고 다듬어진 온화하고 잰틀한 면모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거듭난 사람들의 인격적인 특성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진중히 여기고 그 명령에 순종하려고 하는 신앙의 추구 속에서 형성된 신앙적인 특성을 말합니다. <예증> 모세의 온유함 우리말 성경에서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해보면, 온유한 사람은 ‘대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모세가 살았던 고대시대에는 ‘종’, 곧 ‘노예’가 거의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전쟁을 통해서 잡혀온 사람들이었는데, 이 히브리어 단어가 말하는 대답하는 사람이란 바로 주인의 질문이나 요청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대답을 하는 ‘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의 온유함이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보다 승했다. 곧 ‘가장 온유했다’는 말씀은 그토록 모세가 자신을 하나님의 노예로 여기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질문과 명령에 ‘예’ 하고 대답을 하고 순종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우리는 ‘humble’ ‘겸허함’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 어떻게 온유해 지는가? 크게 둘째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강조하신 ‘온유한 자’가 될 수 있겠는지 그것도 모세의 예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는 40여년을 이집트의 상류계층에서, 그리고 살인자로 낙인이 찍혀서 40여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일반적인 성향과 성품은 초기 40년에 모두 형성이 된 것이고,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광야에서의 40년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최고의 온유함’을 형성한 시기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광야에서 ‘지면에서 온유함이 가장 승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광야는 자신을 가장 많이 대하고 또한 자연과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가장 많이 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갈 때와 또 다른 40여년을 광야에서 지내고 났을 때와는 모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모로 알 수가 있습니다. (3) 땅을 상속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예수님께서 그러한 종류의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이며, 누누히 말씀을 드리거니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땅, 곧 물질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비롯한 여러가지 복들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진실입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이 ‘온유함’ 이라는 것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은사가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성품은 오랜 기간동안 광야에서 단련된 성품입니다. 수 많은 분노와 불순종, 교만과 실수들이 하나둘씩 깎여나가서 시냇가의 모가 없는 조약돌처럼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대답하고 순종하는 삶이 깃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덕목이 바로 이 ‘온유함’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복이 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수 많은 복들중에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실제로 받습니다. 지금도 땅이라는 것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는 땅을 상속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소유한 사람은 종들과 가축들을 부려서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축복의 메세지> 온유한 자들이 되어서 땅을 기업으로 받고, 그것을 가지고 더욱 유익하고 영향력있는 일을 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좀 더 성경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이 땅에서 유산으로 받는 기업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이미 영원한 기업을 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니, 우리는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3. 실천적 적용 1)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께 겸허해지고 온유함을 훈련받았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미디안 광야는 어디일까요? 설교자는 그것을 개인의 묵상과 관련해서 적용을 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설교시간에 1차적으로 적용한 실제로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온유한 자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영역의 주권을 선포하는 측면과 최종적으로 온유한 자가 상속할 저 하늘의 영원한 기업에 대해서 더욱 생각해보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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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2월 15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4/애통하는 자의 복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장~7장에 대한 일련의 강해설교로서 ‘예수님과의 산행’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였고, ‘애통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역설적인 복은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복이 있도다 애통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는 먼저 ‘복되도다’ 라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의 복 됨을 강조 하셨는데, 오늘은 두 번째로 ‘애통하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직역해서 원문의 어순대로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 그 두 번째 예수님과의 산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해해야 하는 말은 바로 ‘애통하다’로 번역된 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일단, 전체적인 의미로 볼 때, 이것은 역설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애통하는 것과 복 되다는 것은 의미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살이의 육신적인 일들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리즈로 언급하고 계시는 소위 이 팔복, 곧 여덟가지의 복들은 ‘The kingdom of heaven’, ‘하늘의 왕국’ 이라는 매우 신학적이고 영적인, 곧 하나님 적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애통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셨을까요? 첫째로, 자신의 죄인됨과 죄를 범함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에 애통해 하는 사람들은 그 애통함 때문에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이것이 이 문맥상, 더욱 핵심적인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간절함 때문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의 애통함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이 세상의 어두운 현실 때문에, 이 땅에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그 하나님께 마땅한 경배를 돌리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슬퍼하고 비통하며 애곡하는 자가 또한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죄와 불순종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이 세상은 더욱 어둡고 죄악이 가득차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저러한 핍박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을 지라도 그러한 현실을 보면서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은혜와 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나는 정말 복이 있는 애통하는 자인가? 나의 죄와 불순종 때문에 때때로 애통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 땅에 이루도록 설립하신 이 지상의 불완전한 교회의 모습과 여전히 이 땅에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 하면서 애통하고 있는가? 기도 속에서 자문해 봅시다. 2)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는 ‘묵상의 자리’에 직접적으로 나아가 봅시다. 주일의 메세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영혼의 요소 중에서도 거룩한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교회들을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도록 기도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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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2월 08일
In 아침 칼럼
마태복음 5:1~3/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장~7장에 대한 일련의 강해설교로서 ‘예수님과의 산행’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였고,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장의 직전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수 많은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적당한 자리에 앉으시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다가왔고, 그때부터 입을 여셔서 그야말로 보석과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원문에는 ‘복이 있습니다’ 가 강조되어서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렇게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가난한 자’ 인데, 뒤에 ‘in spirit’ 이 붙어 있으니까 이것을 넣어서 직역을 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복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에 가난한 자에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은 물질적인 부에 대한 필요와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부요함에 대한, 곧 영적인 필요와 목마름을 간절히 느끼는 사람을 말합니다. *** 설교하면서 가장 강조되었던 부분의 설교원고를 그대로 옮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큰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물질적인 가난함은 그냥 그것 자체를 자신의 육체와 감정으로, 주변의 상황과 환경과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바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반면에 영적인 가난함은 사람들 스스로가 인지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영적인 무지’와 ‘영적인 무감각’이라고 지칭을 하겠습니다.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즉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친 아들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셔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독하고 저주하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수 많은 것들을 자신의 신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이 인간에게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자신을 창조하신 분,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채, 자신의 영혼이 그토록 비참한 상태에 있는데도 그것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까? 그것이 바로 ‘죄의 가공할 만한 능력’ 이라는 것이 성경진리의 뚜렷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 됩니다. 이 진실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지,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목마르고 배가 고픈지를 자기 자신이 통렬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니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그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기를 원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물이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본능적으로 땅을 파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목마른 사슴과도 같이 그는 간절히 영적인 갈증을 해결하기 원하는 복된 마음이 됩니다. 2)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개념보다는 매우 영적이고 영속적입니다. 좀 더 쉽고 경험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적’ 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새 예루살렘성, 하나님의 도성은 그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말합니다. 하늘의 왕국이라는 위치와 그 나라를 치장하고 있는 것들도 휘황찬란한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게 되는 복은..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는 복을 소유하게 되고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로 이 세상에 세우신 신적인 기관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을 이루게 되며, 그 분의 은혜와 진리를 누리는 복을 소유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심령이 가난해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각 개인은 그를 자신의 주요,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은혜롭고 능력있는 통치를 받아 죄와 유혹을 물리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놀라운 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영적인 목마름이 사라지고 마음이 간절해 지지 못한 상태는 영적인 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어떤 생각이나 어떤 상황이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부요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보고 기도와 묵상으로 연결해 봅시다. 2)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우리가 소유한 세 가지 의미에서의 복을 떠올리며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그 분께 맡기며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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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01일
In 아침 칼럼
요한계시록 21:1~/소망의 인내(5)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목격한 두 가지와 보좌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차례대로 강해하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과 이 땅에서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세례요한이 본 두 가지 사도요한이 본 첫 번째는 1절의 말씀처럼, ‘새 하늘과 새 땅’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드셨던 궁창, 곧 하늘이 없어졌고, 바다와 바다가 모여서 드러나게 되었던 땅도 없어졌고, 또한 모든 바다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사도요한이 두 번째로 본 것은 2절의 말씀처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처음에 지어진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의 도성’를 의미합니다. “City of God” 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망하게 되는 것이냐 하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것 같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준비된 우리의 거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고, 그가 본 것은 우리가 보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2) 사도요한이 들은 것 그러한 후에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의 3절과 4절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오래 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그 예언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첫째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중에 거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장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성,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히 거주할 장막을 의미하고, 우리가 영원히 살 그 장막에서 함께 거하실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 집에서 외국인이나 심지어 하인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 백성, 곧 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이라는 한 민족과 나라를 택하셔서 샘플링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역사와 습속, 그리고 언어와 생활방식을 그대로 다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완벽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시해 주신대로, 그 샘플이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퍼져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죽음과 고통을 가져오는 팬데믹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하는 거룩한 복음의 전염이 온 세상에 일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심지어 다윗과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할 한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오직 그 분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위로와 소망의 음성이 요한에게 들려졌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 설교하는 동안 제 속에서 강하게 외쳤던 메세지를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여러분, 죽음과 그로 인해서 애곡하는 것이나 울부짖는 것, 그리고 모든 육체적 고통의 원인인 질병들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본래부터 그랬던 것입니까? 본래 인간은 자연적으로 죽을 운명으로 진화된 것이었습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로 정신적 슬픔과 육체적 질병과 그에 따른 수 많은 애통과 고통 들이 생겨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 곧 첫 아담, 4절 마지막의 표현대로라면, ‘the first things’ 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무나 불행하게도 이 첫 아담 안에서, 곧 아담의 불순종의 범죄와 타락 안에서 이러한 첫번째의 것들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4절의 말씀이 소망으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오면, 첫 아담 안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죄와 그 죄에 대한 책임이 법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예수께로 넘겨집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오면, 죽음과 슬픔과 고통을 가져온 바이러스의 모체 와도 같은 그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종식됩니다.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 이것이 오직 유일한 죄를 죽이는 백신의 결정판 입니다. 그것이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여러분의 두 눈에서 흘렸던 모든 눈물 방울 하나하나를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많이 나도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많이 울면서도 잘 견뎌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능히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많은 죽음을 보며 크게 슬퍼하고 애곡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죽음을 보고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또한 그렇게 하겠지만, 그 곳에는 더 이상 눈물을 흘려야 할 일들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수 많은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을 느껴야 하겠지만, 그 곳에는 더 이상 그러한 질병들과 고통들도 없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망의 음성을 일평생 마음에 새기시고 지금 다가온,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장애물들을 이 소망의 인내로 능히 극복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언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사도요한이 보고 들었던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소망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에 대한 각자의 반복적인 읊조림(묵상) 속에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불붙게 해 주시기를 실제로 기도의 실천으로 옮겨봅시다. 2)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눈에 눈물이 고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눈물을 닦아주실 하나님과 죽음과 슬픔과 질병과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 없는 영원한 예루살렘 성, 곧 하나님의 도성(도시)를 묵상해 보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유투브에서 찬양을 들어도 좋고, 직접 불러도 좋습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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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월 26일
In 아침 칼럼
딤전 6:17~19/소망의 인내(4)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 속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어떻게 권면해야 할 지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으로서 두 가지의 부정적인 명령과 두 가지의 긍정적인 명령을 간략하게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두 가지의 부정적인 명령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부자들’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어야 할 지에 대해서 매우 실제적인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선, 두 가지의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이 먼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국어 번역의 좀 더 구어체적인 표현은 ‘으시대고 우쭐대지 말라’ 입니다. 그러니까 돈과 재물이 많은 부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자신들이 가진 많은 재물때문에 으시대고 우쭐대지 말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부정적인 명령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부의 불확실성 에다가 그들의 소망을 fix 하지 말도록’ 하라는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돈과 부에 대한 이 세상의 가치관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리고 너무도 고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혹은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추구하는 이 세상에 있는 돈과 부함은 불확실성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돈이 필요하고 또한 부를 축적해서 복되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겠으나 남들보다 풍족하게 지녔다고 마음이 높아지고 으시대지도 말고, 무엇보다도 거기에 우리의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2) 두 가지의 긍정적인 명령 그 다음에는 두 가지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명령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도는 자신이 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고 명령합니다. 앞의 논지와 비교해 볼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보다 더 확실한 존재나 물질은 이 세상에, 아니 저 하늘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는 그토록 절대적으로 확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하셔서 그것들을 가지고 즐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두 번째 긍정적인 명령은 사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네 가지 정도의 구체적인 실천이 열거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가지고 있는 부를 가지고 선한 일을 위하여 쓰라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18절 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 말씀은 분명히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서 불확실하고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상에서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이 세상에서의 돈과 부에 소망을 두지 말고, 이 세상에서도 그것들을 즐겁게 누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나라에서의 기쁨과 만족을 보장해 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할 수 있는 선한 행실 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약정리> 일, 재물이 많다고 교만해서 우쭐대지 말아라 이, 저 영원한 하늘나라는 관두고 100여년을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 속에서도 확실성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라 삼, 오직 저 영원한 나라를 보장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필요한 것을 충분히 공급해 주시고 적절하게 즐기도록 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라 사, 그러므로 너희에게 여분의 부와 재물이 있다면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어라 오, 바로 그러한 생각과 행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고, 그것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저 영원한 미래와 이 땅에서의 삶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십시다. 그러면서도 저 하늘나라에 이르기 전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풍성히 공급해 주시는 것을 잘 즐기면서 사십시다. 그러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선한 일을 많이 합시다. 나누어 주기를 더욱 힘쓰십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각자가 하나님 외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더욱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해 보고 마음으로 부터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음을 진심으로 고백합시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누어 주기를 즐거워하며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신앙적인, 그리고 윤리 실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이 하나님의 명령을 신실하게 실천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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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월 17일
In 아침 칼럼
롬 12:12,13/소망의 인내(3)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소망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바울의 진술을 강해하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바를 간절히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열방의 소망 우리가 두 주간 동안 들었던 말씀을 돌이켜 보건데, 결국 영원한 유업을 잇게 하시는 산 소망을 그리스도 안에 두셨고, 우리가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에게 순종하며,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게 하시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더욱 크고 광대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8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이새가 다윗의 아버지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이새의 뿌리’ 라고 말한 것은 다윗의 계보를 타고 이 땅에 나심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바로 다윗과 그의 아비 이새의 뿌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위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열방, 곧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과 그의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이가 되실 것이며, 그 모든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그 분 안에 둘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구체적인 적용점 은 전도와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연결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그 옛날, 약 402년전에 이 땅을 처음으로 밟았었던 필그림 파더스들의 소망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진흥” 입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해서, 그들도 예수 안에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와 삶의 목적을 알도록, 그리고 그들도 그것을 위해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의 전도와 선교의 영광스러움입니다. 2) 바울의 기도 이제 바울은 13절 말씀에 이어서, 소망과 관련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드립니다. 첫째로 바울은 소망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전의 문맥을 살펴보건대, 우리를 비롯한 열방이 예수에게 소망을 두도록 하시는 그 모든 구원의 일을 계획하시고 주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그리스도 안에 두지 못하고 죽은 소망을 붙들고 영원히 소망이 없는 곳으로 갔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 이시므로 너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느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우선, 이 문장 전체는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문장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소망을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모든 기쁨과 평화’ 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좀 더 덧붙여서 단순한 기쁨과 평화가 아니라, 그것도 ‘믿음 안에서’의 기쁨과 평화, 곧 믿음이라고 하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하는 속에서 얻는 기쁨과 평화는 우리의 소망을 풍성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그렇게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가 충만해 질 뿐만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되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소망이 이 땅에서 더욱 풍성해 지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궁극적으로 저 하늘에, 그것도 영원한 기업을 잇는 방식으로 우리의 죽음 이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복된 균형을 가르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이 기도하듯이 말하고 있는 이 소망의 풍성함은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소유하고 누려야 할 소망이라는 말씀입니다. 저 하늘나라에 가면 정말 완전한 기쁨과 평화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 안에 두었던 우리의 소망이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아직 더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소망의 풍성함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주의를 ‘성령의 능력으로’ 라고 하는 말씀에 집중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것이 기독교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진리의 종교는 이러한 종류의 영적인 이해와 경험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즉,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과 능력이 항상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성령의 능력’ 이 개입됩니다. 이것이 우리 종교의 특질입니다. 성령은 제3위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 분의 능력으로만 이 험란하고 죽은 소망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산 소망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하기 위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일을 삼가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더욱 순결함에 이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매일 실천해야만 하는 거룩한 의무인 ‘묵상’의 연습과 실천을 각자의 스케줄 속에 시간을 정하고 이 의무를 실천합시다. 2) 수요일 새벽과 토요일 새벽 시간을 계속해서 격려해 드립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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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월 12일
In 아침 칼럼
베드로전서 1:1~12(7절까지 읽기) /소망의 인내(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 앞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강해 하며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 간결하게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그리스도인의 정체에 대한 '베드로적 표현' 첫번째는 1절 맨 끝에 보니까 ‘흩어진 나그네’ 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포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그네의 삶’ 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신분이요, 바른 정체성 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 거쳐가는 인생이요, 이 세상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지혜롭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물질과 재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 이라는 정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어떤 신학자들이 이 진실을 자신의 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석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을 말합니다. 셋째가 가장 마음에 다가오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와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함’ 이라는 것입니다. 원문에 보면, 순종하는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에 의해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요, 그리스도의 피 뿌림, 곧 죄사함과 정결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 3절에 보면 우리에게 ‘living hope’,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인 죽은 소망이 있으니, 그것을 4절에서 말해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뒤집으면 됩니다. “썩어지고 더러우며 쇠하여 질 유업’, 바로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함께 그렇게 될,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다 타버리고 녹아버릴 ‘죽은 소망’ 이 있다는 것이며, 베드로가 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썩어지고 더럽고 쇠하여 질 유업에 ‘죽은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가 찬송하고 있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 곧 그의 헤세드, 그의 아가페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서, 오직 그 역사적 진실을 통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에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imperishable’ ‘불멸, 불사한’, ‘undefiled’ ‘더렵혀지지 않은’, 그리고 ‘will not fade away’ ‘사라지지 않을’, ‘reserved in heaven for you’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보유된’ ‘inheritance’ ‘기업’ 입니다. 3. 적용적 메세지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망이 무엇 이냐고 물으시면 ‘건강과 행복, 안정과 성취’라고 말하십시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아니, 그것은 복되신 우리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 고작 이 세상에서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정과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갑시다. 우리의 소망을 묻는 사람들에게, 아니 그 이전에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우리를 위하여 저 하늘에 간직하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 이라고 말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유업을 잇게 하시는 그 소망의 근거가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첫째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자신의 무궁하신 긍휼하심으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부활하게 하신 성부 하나님이시요, 둘째는 성부에게 아멘하셔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고 사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 앞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셋째는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말합시다. 여러분, 이 진리의 실제를 감당하십니까? 이 진리를 때때로 여러분의 기도와 묵상속에서 실제로 경험하십니까? 이 진리가 여러분의 지성을 밝게 하고, 기도와 묵상 속에서 불타오른다면 여러분에게 어떤 능력이 주어지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인내’ 입니다. 우리는 그 진리의 빛과 은혜의 불 안에서 ‘인내’로 연단을 받게 됩니다. 강한 인내의 사람들로 연단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날까지 베드로가 언급했던 ‘불시험’도 통과하게 됩니다.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도 더 귀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수 많은 고통과 고난과 핍박과 죽음도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소망하는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정과 성취’에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저 하늘에 있는 소망, 곧 여러분의 영원한 기업을 잇는 일을 위하여 해야 할 여러분의 거룩한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지역교회의 지체들로서 감당해야 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소홀히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남은 생명의 시간들과 에너지, 그리고 재능과 물질을 이 세상에서 끝나버릴 것들뿐만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을 것들에게 사용하시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격려하는 선한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지역과 전 세계에 퍼져있는 영혼들도 우리와 같은 영원한 소망을 갖도록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남은 인생을 가장 적합하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4.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내가 필요한 일들은 무엇인지,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 있는지를 잠잠히 생각하며 묵상해 봅시다. 2) 오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기업을 소망하며 인내할 수 있는 근거와 능력을 우리 성도들의 거룩한 의무인 묵상 속에서 경험하며 공급받읍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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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월 05일
In 아침 칼럼
데살로니가전서 1:3/소망의 인내(1)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인내'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소망의 대상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강해하며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 간결하게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본문의 배경 오늘 설교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의 가장 초반부인 인사말에 해당됩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에 거의 이러한 패턴으로 인사를 하는 그 당시의 편지들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사도와 그의 일행은 일정 기간동안 사역을 한 뒤에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바울 자신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곳으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자신은 아덴에 머물면서 디모데를 그 곳으로 보내게 되고, 디모데가 와서 상세하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게 됩니다. 첫째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로, 교회가 여전히 사도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사도는 이렇게라도 편지를 써서 그들을 격려하고 권면 하기를 원했습니다. 2) 소망의 대상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고 그들을 격려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들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들의 신앙적인 특성이었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교제할 때에든, 혹은 디모데를 통해서 들었을 때에든,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이렇게 뚜렷한 세 가지 정도의 뚜렷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절 후반부의 본문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주제인 ‘소망의 인내’로 약간 범위를 좁혀보면 , 우선 첫째로, ‘소망의 대상' 이 나옵니다. 원문을 직역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면전 안에 있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 입니다. 저는 이 꾸며주고 또 꾸며주고 있는 문장의 구조를 이렇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일단,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계시냐 하면,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로 마주 대하시면서, 곧 저 하늘나라, 곧 성부와 성자가 함께 거하시는 바로 그 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그러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하늘나라의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하게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망이 바로 하늘에 계신, 그것도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히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3) 소망의 인내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소망이 무엇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인내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오기전에 빌립보를 거치게 되었는데, 그가 데살로니가전서 2:2절에 보면 이러한 탄식어린 고백이 나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빌립보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는 그의 전도여행 기간 중에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은자가 된 적도 있었고, 어디를 가든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천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2:14, 15 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큰 고난에 처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이방인들이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동족에게서 그들 역시 동일한 고난을 받았으며, 게다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대적이 되어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려고 치면, 그들이 그렇듯 수 많은 자신의 이방인 동족들과 유대인들의 능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내 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들의 소망을 저 하늘 아버지의 면전 앞에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고 응원하시며, 도적과도 같이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신조어를 만들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그것은 “Christianity Elpisism” ‘기독교 소망주의’ 입니다. 헬라어 엘피스는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근거 있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독교 소망주의자가 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근거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 앞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엘피스는 잃을 수가 없는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망이 저 하늘 아버지와 친밀하게 함께 계시며 이제 속히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one hundred persent, 아니 absolutly, 절대적으로 잃어버릴 수 없는 근거가 있는 소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내가 필요한 일들은 무엇인지, 어떤 고난이나 시험이 있는지를 잠잠히 생각하며 묵상해 봅시다. 2) 오늘 말씀처럼, 소망의 대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묵상한 어려움들을 인내하며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고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간구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5:3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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