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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1월 16일
In 교리묵상
시편 136:1~9/감사의 신앙고백(2)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감사의 신앙고백’이라는 시리즈 설교의 서론에 해당되는 설교로서, 성경이 말하는 감사의 미덕을 실천하는 진정한 기반이 무엇인지를 해설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이번주는 설교녹화를 하지 못해서 설교원고 전체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A. 들어가면서 <예화> 헬렌켈러의 감사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헬렌 켈러의 수필에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 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 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 싸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이 3일 동안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B. 본문강해 1. 감사의 기반 여러분, 방금 언급해 드린 헬렌 켈러는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결코 3일 동안 만이라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 가정 속에서도 그녀는 3일 동안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자신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주 말씀을 기억해 보시면서, 답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생후 19개월 이후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 버린 후,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절망 속에서도 헬렌 켈러의 이 위대한 감사의 고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녀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자신의 생애 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불행 속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성령의 중생케 하심으로 열리게 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또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렐루야!! 2. 본문의 구조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시대에 경험 했던 한 시인의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는 26절의 매 절마다 ‘감사하라’는 명령이 먼저 나오고, 그 감사의 이유인 ‘그 인자 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하는 고백이 후렴구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댓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26절 전체에서 시인이 깨닫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1절에서는 오직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2절과 3절에서는 다른 신들이나 왕들 과는 비교가 불가한 ‘하나님 자신의 뛰어나심’에 감사하라고 외칩니다. 셋째로, 4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홀로 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이’ 에게 감사하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 큰 기이한 일들을 열거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Great wonders’ ‘큰 놀라운 일들’ 중의 첫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천지창조’ 였는데, 5절부터 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은 ‘애굽의 장자를 치셔서 애굽을 탈출하게 하시고, 홍해를 가르셔서 통과하게 하신 일’, ‘쫓아오는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 시키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일’, ‘큰 왕들을 치셔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일’ 등 입니다. 이것들을 교리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하나님의 천지창조, 하나님의 구속과 언약의 성취 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라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3. 감사의 신앙고백: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 자, 그럼 이제 본문 1절로 들어가서, 시인처럼,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의 신앙고백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하시다’ 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좋았더라’ 하는 말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토브’ 라고 합니다. 특별히 여섯째 날에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는 ‘it was very good’,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그처럼 매우 좋았다고 한다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분, 곧 선한 분이실까요?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처럼 절대자이신, 곧 신성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우리와 같이 제한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는 합니다. 아니, 어느 때에는 예를 들기도 마음이 참담 하기는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진리와 갈등이 되는 측면도 이 세계의 역사와 우리 개인의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수 없이 많은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참혹한 전쟁과 자연의 재해를 허락하셔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가져 가시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도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과 사고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왜 이 세상에 가득한 악을 척결하시고 악인들을 벌하지 않으시는가? 등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지를 두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만약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매우 좋은 상태로 지속이 되었다면, 그렇듯 불행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만한 일들은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이 가득한 그 악들에 대해서, 어떠한 타협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대로 다루셨다면, 이 세상은 이미 멸망하고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천지만물과 모든 역사에 작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두 번째의 설명은 이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신앙의 측면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이 ‘선하심’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자’ 혹은 ‘불쌍히 여기신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을 발휘 하셔야 할 대상, 곧 불쌍히 여기심을 받을 처지에 놓인 대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은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loving-kindness’, ‘어질고 사랑함’ 이라는 뜻을 지닌 하나님의 인애하심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감사해야 할 위대한 제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타락했기 때문에, 악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고통 하는 인간자체를 불쌍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그냥 불쌍히 여기시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약의 많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보이시면서, 특별히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지시고 사랑이 많으신 신적인 본질을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마디로 ‘복음’ 이라고 합니다만.. 우리에게 그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또 그 소식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 복음을 깨닫고 경험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고백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임을 보았습니다. 헬렌 켈러는 죽을 때까지 그녀의 소원대로 결코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연상하면서, ‘아름다운’ 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C. 실천적 적용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 감사의 계절에 농도 짙은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이미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묵상해 봅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숙고해 봅시다. 혹은 어거스틴과 같이 어렸을적 부터 지금까지의 참회록을 한번 써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중한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고 지금까지도 인내하시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푸셨던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다면, 그 성품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거나 충만해질 것이며, 그 사랑으로 가득해진 마음으로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묵상가이드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를 다시 듣거나 '한 주간 주일 메시지 묵상'을 읽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이나 경건한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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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1월 09일
In 교리묵상
시편 136:1~3/감사의 신앙고백(1)-선하시고 탁월하신 분이시기에…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감사의 신앙고백’이라는 시리즈 설교의 서론에 해당되는 설교로서, 성경이 말하는 감사의 미덕을 실천하는 진정한 기반이 무엇인지를 해설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감사의 미덕 우리 말 중에 ‘미덕’ 이라는 참 좋은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덕’ 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덕’이라는 말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교육이나 훈련, 혹은 수양이나 노력 등으로 인격을 잘 가꾸어서 많이 애를 쓰지 않아도 어떤 규범이나 윤리 도덕의 바른 길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된 사람의 행실을 가리켜서 ‘덕’ 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덕이 있는 사람이 덕스러운 행실을 하게 되면 그것을 우리는 그 사람은 참 ‘선하다’ 이렇게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미덕’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생명을 건져준 이야기와 장면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또 우리 한국적인 전통에서 본다면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황금색 보따리에다가 배니, 사과니 선물을 싸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선물세트를 사가지고 꼭 감사해야 할 분들을 찾아뵙고 선물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광경들이 미덕이라는 말과 연상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다시 이 감사의 계절을 맞으면서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으니,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달고 예쁜 홍시처럼, 우리의 감사의 농도가 더 짙어지고, 감사의 모습도 더 예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미덕의 본질 본문은 다음 두 번의 설교에서 더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오늘은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서론적인 말씀을 좀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미국 땅에서 살았던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을 ‘조나단 에드워즈’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명저인 ‘The nature of true virtue’ ‘참된 미덕의 본질’은 그의 철학과 신학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참된 미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존재 일반(being in general), 좀 풀어서 표현한다면, 오직 유일한 지성적인 존재인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이 ‘참된 미덕의 본질’ 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렵게 느껴지는 이 분을 인용하냐 이유는 ‘추수감사절’ 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그래서 이 때가 되면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고, 어떤 특별한 헌금을 드리고 선물을 나누는 특별한 감사의 기회를 갖는 것도 좋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감사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으로 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참 좋은 ‘감사’라고 하는 미덕의 출발점이 우리의 관습이나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도야된 사람의 선한 인격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사랑과 존경도 없는데, 도의상이나 체면 치례 정도를 하려고 보따리에 선물을 싸서 전달해 주는 그 정도 여서는 사람에게나, 특별히 하나님께 바른 감사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참된 감사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가 농익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 진실하고 뜨거워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 해져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농도가 짙어질 수 있을까요? 우선 첫째로, 다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일관된 통찰을 따르자면, 한 사람이 성령의 역사로 인한 진정한 거듭남과 함께 그 사람의 마음에 거주하시는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감동하심을 입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미덕’을 참되게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이 시간,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이 거룩하고 복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나는 진정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그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깨닫게 해 주시고(조명) 감동하시는 성령의 역사 하심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살아있는 신앙생활 입니다. 수시로 진리를 깨닫고, 수시로 감동과 눈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지점을 스스로 검사해야 합니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이방인인 소크라테스도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보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복된 행위인 거룩한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examine’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감사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의 감사가 더욱 온전해 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참된 감사를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온전히 그것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두주 동안 이 본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농도짙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부터의 진실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설교자는 성령을 통한 진정한 거듭남과 성령의 충만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했을 때에 어떠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를 나눠봅시다. (2) 우리의 경험상,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감동 하심은 주로 어떠한 일들을 통해서 주로 경험하게 되었었는지 나눠봅시다. 4. 묵상명언 "우리는 비록 죄는 많아도 성도라고 불린다. 이 사실은 밀밭에서 많은 잡초를 보더라도 우리가 그 밭을 잡초 밭이라고 부르지 않고, 밀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폴 베인- ** 묵상가이드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를 다시 듣거나 '한 주간 주일 메시지 묵상'을 읽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이나 경건한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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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1월 01일
In 교리묵상
요한복음 2:1~11/복음의 영광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복음 전도주일의 요한복음 연속 강해 설교로서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에 ‘복음의 영광’을 주셔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위대한 역사를 해설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가나의 혼인잔치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확실합니다. 때는 ‘사흘 째 되던 날’ 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로부터 사흘 째 되던 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이것이 아마도 안식일인 토요일로 부터 사흘이 지난 화요일을 의미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 셋째날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셋째날과 연관시켜서 더욱 복이 있는 날로 여겼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장소는 갈릴리 지방의 ‘가나’라고 하는 동네 였고, 아마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이거나 혹은 매우 가까운 이웃에 혼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까지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바닥이 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문득, ‘이 사람들이 얼마나 포도주를 들이 마셨길래 포도주가 그새 동이 나 버렸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유대인의 혼인예식은 일주일동안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혼인예식’ 이라고 하는 본문의 문맥에 가장 알맞는 시편 104: 13-15절의 참 매력적인 말씀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그렇습니다. 기쁨의 잔치인 혼인예식에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가 동이 나버렸으니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2) 해결의 길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마도 이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혼주 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만,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육체로 낳은 어머니 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부터 어린 시절 그를 양육하고 성장하면서, 예수님이 나타내시는 인격과 지식, 그리고 그의 행동을 통해서 그가 일반적인 사람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표적을 나타낼 때가 아직은 아닙니다.” 라고 하는 거의 거절 과도 같은 예수님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단단히 명령을 내립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3) 물이 포도주로 그 결과는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모친이 일러둔 것처럼,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20 혹은 30갤런 정도가 되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채웠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그 그 돌항아리에 담긴 물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하인들은 돌항아리에 담겨 있었던 물을 포도주 컵에 따를 수 있는 어떤 용기에 넣어가지고 가져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회장이 맛을 보게 되었던 것음 물이 아니라, 이미 변화된 최상급의 포도주 였습니다. (4) 복음의 영광 그런데, 이 본문의 기적의 사건도 매우 놀랍고 흥미롭지만, 우리들의 주의를 끄는 말씀은 그 다음 1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 기적을 ‘첫 표적’, 곧 ‘beginning of His signs’ 라고 말하면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즉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특별히 이 교회의 강단에 ‘복음의 영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다면, 혹은 어떤 어리석은 분들이 시도했던 대로, 정상적인 이빨이 금니빨로 바뀌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의 시대와 같이 그러한 표적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의 증언처럼, 제자들이 표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영광, 곧 예수께서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성경시대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일에 미혹되거나 마귀의 장난에 속아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던 역사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으키셨던 기적을 보고 거기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던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복음의 영광’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이 복음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십니다. 3. 실천적 적용 실제로, 이 복음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만 사람의 영혼에 부어지는 Spiritual wine 이 인간의 타락과 죄악으로 인해 바닥이 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와인으로 자신의 영적인 필요과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고자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물질적인 것들로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의미하는 어쩌면 더 궁극적인 의미인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를 믿음으로 마시는 자의 죄를 사해주시고, 다시금 하나님 께로부터 공급되는 영적인 포도주를 마음껏 들이키고 참된 기쁨에 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직 그러한 방식으로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새술에 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방식은 ‘복음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그것을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하인들이 보여주었던 믿음과 순종이라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복음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놀라운 표적을 우리 가운데 행하실 것을 믿는 강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이 또한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복음을 통하여 나타나사 자신을 믿게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4. 묵상명언 "수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하지만 그들은 길을 잃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성과 없이, 부패하여 거룩을 잃고 썩어 들어가는 교회들은 분명 슬픈 것입니다. 설교를 하지만 자신의 사명의 부름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놓치는 자들은 무서운 재앙입니다. 자신이 신문사 기자이던지, 농부가 되었던지, 의사, 변호사, 상원의원 또는 왕이 되던지 간에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성령께서 그들 안에 충만히 거하시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공허함 만을 달래기 위하여 쫓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오직 주님께서 내려주신 사명의 귀함을 아는 자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선포하고자 하는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만약 자신이 높아지기 위하여 설교를 한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까? 우리는 누가 주신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까? 자신을 받들고 자신에게 봉사한다면 절대로 복음을 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C.H. Spurgeon- ** 묵상가이드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를 다시 듣거나 '한 주간 주일 메시지 묵상'을 읽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이나 경건한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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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10월 25일
In 교리묵상
데살로니가 전서 4:13~18/소망의 바다(5)-재림의 소망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재림의 소망에 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까지의 말씀을 두 가지의 요지, 곧 첫째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자의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의 재림 안에 있는 신자의 영광 스러움에 대해서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신자의 죽음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13, 14, 15절에 각각 연이어서 죽음에 대한 매우 독특한 표현과 의미가 나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기록해 나가면서 13절 초반부에서 아예 이 화두를 이렇게 꺼냅니다. “자들 자들에 관하여는…”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신자의 죽음과 그 이후에 될 일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신자의 죽음을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이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잠 듦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대로 ‘영원히 잠든다’는 의미에서의 잠 듦이 아아니라, 잠들었다가 반드시 깨어나는 그런 잠 듦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낮잠을 자든, 밤잠을 자든 깨어나는게 당연하겠지만, 위대한 성경의 교사인 사도는 14절에서 그 질문의 답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 곧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죽음은 결코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서 잠시 잠드는 것이라는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2) 재림 안에 있는 신자의 영광스러움 이제 둘째로 더욱 놀랍고 영광스러운, 그리고 소망이 넘치는 마지막 한 가지의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사도는 또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들보다 먼저, 예수 안에서 자는 믿음의 사람들을 깨우셔서, 곧 부활 시키셔서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신다고 14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로 데리고 오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만약 우리가 예수께서 재림, 곧 다시 강림하실 때까지 이 땅에 살아 남아 있게 된다면, 다시 살리신 그들을 이미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우리에게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이 일의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다시 강림하시기 전에 잠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얼마나 영광스러워 지는 줄 알과 확신한다면, 우리는 또한 예수 안에서 영광스럽게 잠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는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먼저 잠들었을 지라도 예수님의 재림시에 살아 남아 있는 자들보다 앞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곧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의 영광 스러움에 먼저 참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살아 남아 있던 신자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도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먼저 죽음의 잠에서 일어난 사람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서 저 하늘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상에서 죽음을 경험했지만, 그 때에 살아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과 지상에 남아 있어서 부활의 몸으로 끌어 올려진 모든 사람들이 ‘항상, 그리고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 입니다. 3. 실천적 적용 이제까지 말씀드렸던 이 일들은 언제일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날 일들 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영원하고 복된 소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 안에서 재림의 소망 안에 있는 여러분들이여, 첫째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재림의 소망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부활과 재림의 주를 영접하기 위한 한 과정입니다. 둘째로, 이 재림의 소망 안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잠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항상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바라며,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시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과 그것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이기지 못할 것들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말고 오늘 함께 들은 이 복된 복음의 진리를 서로에게 말함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더욱 사랑합시다. 4. 묵상명언 “기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 영혼의 가장 높은 활동입니다. 인간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대면할 때 가장 위대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게 됩니다.” - 마틴 로이드 존스 - ** 묵상가이드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를 다시 듣거나 '한 주간 주일 메시지 묵상'을 읽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이나 경건한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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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2022년 10월 19일
In 교리묵상
요한계시록 21:1~4/소망의 바다(4)-천국의 소망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천국의 소망에 관하여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두 가지의 요지로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오늘 설교는 첫째로, 사도요한이 계시로 받은 말씀 속에서 ‘천국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둘째로는 ‘천국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천국의 본질 우선, 오늘 본문1, 2절은 천국의 본질을 말씀하기에 앞서서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시각적으로 보았던 천국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았던 새 하늘가 새 땅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그 처음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하늘과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는 또 무엇을 보았는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새 예루살렘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결 했던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았다’고 자신이 본 느낌을 실감있게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은 그 모습자체 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하고 그것을 사모하기에 충분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사실.. 거기까지는 천국의 외형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천국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3절에 나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3절 말씀처럼,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들려오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의 내용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중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사도가 보았던 새 하늘과 새 땅에 만들어 놓으신 새 예루살렘성, 곧 우리가 천국에 거주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하심이 우리 중에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다음에 보면 아예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주하실 것이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완벽하게 완성되는 곳이 천국의 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 천국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친밀하고 완전하게 우리와 함께 거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핵심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본질은 여전히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제 천국에서는 이 영광스러운 관계의 어떠한 불완전함이나 결핍이 없게 됩니다. (2) 천국의 행복 그러면 둘째로 그러한 천국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누리게될 행복은 무엇이겠습니까? 4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오시면서 흘린 눈물의 이유는 무엇들이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흘려야 할 눈물의 이유는 또 무엇들이겠습니까? 그것들이 이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망, 곧 죽음이요, 죽음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요, 또 여러가지 이유로 애통해 하는 것이요, 많은 아픔 속에서 흘렸던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그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눈물’ 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흘렸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 했던 모든 부정적인 눈물의 이유들이 있을 수 조자 없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조차 완벽하게 지어졌지만, 천사와 인간의 타락으로 죄가 가득했었던 그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가 이 지상의 삶 속에서 다가와 있는,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눈물의 이유들이 있을 지라도, 우리가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첫번째로, 천국생활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를 생각하고 묵상해 봅시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과 그 천국에서는 죽음을 비롯한 모든 부정적이고 불행한 어떠한 것들이 있지 않을 것에 대해서 묵상해 보고 소망 중에 거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토요일은 6시부터 ‘시편읽기와 해설’에 이어서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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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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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1일
In 교리묵상
디도서 3:5~7/소망의 바다(3)-영생의 소망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원이 가져다 준 영생의 소망과 그 소망을 따라서 주신 복된 신분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오늘 설교는 첫째로,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된 교리적인 기반을 사도바울의 언어를 따라 해설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축복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의 의미 사도바울의 논지를 따라서,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결코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따라서 영생의 소망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5절의 맨 처음 부분이 말씀하는 바, 인간이 어떤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 구원, 곧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행위구원’ 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어떠한 지지를 받을 수도 없는 거짓된 교리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거듭나지 못한 지성은 성경이 말하는 은혜를 통한 십자가의 구원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이고, 오히려 인간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가 훨씬 더 이성적이고 깔끔하게 여겨져왔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든지 파퓰러 한 주장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그 구원의 일 전체가 성령의 신비한 역사 하심으로 인간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선 첫째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따라서 그토록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구약의 경건한 사람들이 그토록 흠모 하며 찬양 했던 ‘하나님의 헤세드’, 곧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인애하신 성품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들의 잘난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받아들일 수도 없는 구원의 일, 곧 십자가의 일을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경건하지 않았을 때에, 곧 무지와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었을 때에 계획하시고 오랜 세월 동안 역사속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이 진리는 항상 우리의 영혼에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오직 오늘 성경의 본문 안에서만 ‘구원’이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이 말한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 지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중생의 씻음’에 의해서 이고, 둘째는 ‘성령으로 새롭게 됨’에 의해서 입니다. ‘중생의 씻음’ 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 곧 거듭남을 ‘죄를 씻는 것’과 관련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침례 받는 장면을 연상해 보면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거듭난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그의 생각이나 말, 그리고 여러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변화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말 성경 으로는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 다음 6절 말씀이 연결되어나 나오는데, 사실은 6절 전체가 바로 앞에 있는 성령을 꾸며주고 있습니다. 중생의 씻음도, 새롭게 하심도 모두 성령에 의한 것인데, 그러면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시냐 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셨던 바로 그 성령 이시라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모두 함께 나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을 ‘richly’ ‘풍성하게’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2) 영생의 소망 사도의 설명은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도 바울이고, 그러한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사용 하셨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 진리는 더욱 깊고 풍성해 졌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도의 문장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마지막 7절에서…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따라서, 성령에 의한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문법적으로도 명확하게 진술해 나갑니다. 그래서 7절은 목적절을 이끄는 So that 으로 이어집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진리에 의거해서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십자가의 구원을 믿은 자들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그 결과로 주어졌는데, 바로 그 영생의 소망을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상속자들로 만드는 목적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여기에서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사도가 또한 말했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죄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이라는 신분 으로는 하나님의 상속자, 곧 합법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안해 내신 복된 신분의 세탁방법이 바로 ‘칭의’라고 하는 기막힌 방식입니다. 바로 그 신비한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는 놀라운 진리가 오늘 7절 첫머리에 이렇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의 은혜’ 곧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 혹은 의롭게 됨을 얻는 것, 좀 더 교리적으로는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본래 의인이 아니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얻는 영적인 상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 곧 진정한 메시아, 진짜 구원자로 믿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인’이라는 신분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할 ‘후사’ 곧 하나님의 법적인 자녀가 되었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사람에게 놓여 있는 가장 절망적인 일은 ‘죽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흐름 속에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늘 대함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소망’을 소유한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늘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실천합시다. (2) ‘물질의 결핍과 그에 따르는 일상적인 염려와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기업을 상속할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더욱 그 진리를 깊이 알기 위해 노력합시다. 또한 그 진리를 경험하는 묵상과 깊은 기도를 실천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토요일은 6시부터 ‘시편읽기와 해설’에 이어서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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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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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In 교리묵상
렘 17:12~13/소망의 바다(2)-소망의 하나님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로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즉 당신의 택하신 백성의 소망이 되시는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메세지의 강해를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예레미야의 시대 우선, 오늘 우리의 본문에는 바로 ‘고난의 바다’와도 같은 자신의 시대, 자신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 하면서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야 했던 한 선지자가 나오는데,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 였습니다. 그는 모든 역사를 주관 하시며, 자신의 백성들에게는 자신의 선지자를 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실 때도 있었는데, 바벨론 포로의 전후 시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그 곳에 정착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례미야는 가감이 없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민족주의에 빠져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거짓으로 설득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끌려 갔지만,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바벨론에게 패배할 애굽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거짓 선지자들과 대립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굽으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그러한 와중에서도 예레미야는 정치적인 계산이나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함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바다를 통과해야 하는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눈물로 호소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12절과 13절 초반부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 스러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본문을 직역해 보겠습니다. “처음부터 저 높은 곳에 좌정하신 한 영광스러운 보좌는 우리의 거룩한 장소, 곧 성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장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하늘로부터 임재 하기도 하셨지만, 본래는 저 하늘의 보좌가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앉으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좌는 영원하여 그 누구도,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일도 그 보좌를 흔들 수 없이 견고합니다. 둘째로, 선지자는 그 신성한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O LORD, the hope of Israel." 사실은, 이 한 마디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해야 할 위로의 메세지 입니다. 선지자는 그 소망의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소망 중에 거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소망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말하는 대로 그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을 실제로는 떠나 있었고, 그 하나님을 버림으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비유적인 말씀을 이어갑니다.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는 자, 곧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이름이 흙과 먼지 중에 기록이 되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그들의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게 지워지고 날라가 버리고 말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된다는 말씀과 매우 대조적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의 소망이 되시며, 저 하늘의 보좌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거하시는 소망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언제든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혹은 환경적인 것들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위기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는 지금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모든 환란의 풍랑들의 원인을 여기 있는 우리가 학문적으로, 혹은 이치적으로 모두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은 그러한 수치스럽고 위험한 결과들이 하나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표현대로,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린다면 그 결과는 결국, 죽음과 멸망일 뿐입니다. 흙에 기록될 이름 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라고 마음으로부터 소망의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나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얼마 안 있어서 심판의 바람에 날아가버릴 이 땅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는 지,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들에게 임하고 있는 고통과 고난 중에서도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거친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소망의 바다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헤험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위기와 고난이 많은 환란의 시대속에서 우리는 그것들 자체보다 소망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2)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어떠한 때에 하나님을 떠나기 쉽고 버리기 쉬었었는지 나눠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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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1일
In 교리묵상
벧전 1:1~4/소망의 바다(1)-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소망의 바다’ 시리즈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의 근원이 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인은 능히 고난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고난 중의 소망에 관한 서신 우선, ‘소망’이라고 하는 말은 ‘장차 이루어질 일을 바라고 기대함’ 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소망은 단순히 이 땅에서 이루어질 소망 외에 주로 영원한 소망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서 소망의 대상은 하나님 이었으며, 특별히 선지자와 시인들과 같은 경건한 사람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소망이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구원의 완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 구원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소망에 대한 매우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이면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죽는 모든 과정이 고난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 역시도 넓고 깊은 바다와 같다는 것은 생각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 이기도 합니다. 이 서신을 기록 했던 사도 베드로의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리적이고 심적인 핍박과 고난이 매우 심한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조국을 떠나서 미국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이점들을 누리기도 하지만, 언어와 문화, 그리고 심적이고 물질적인 고난을 수시로 경험 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인한 고난과 전세계적인 경제적인 위기, 그리고 쇠약해져 가는 교회들의 영적인 위기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소망의 바다’와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만이 그 소망의 바다를 멋지게 항해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2) 소망을 주신 하나님 사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증거하고 싶은 ‘소망의 메세지’는 오직 한 가지 뿐 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망의 바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선, 사도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함께 찬송합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소망의 바다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주셨냐 하면, 3절의 말씀처럼 바로 우리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 예수를 다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이 있게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위로가 되고 감격이 되는 것은 아들을 다시 살리시고 우리 또한 다시 살게 하신 그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긍휼과 자비, 곧 그 분의 헤세드를 따라서 이루어졌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죄에 대해서 진노 하시는 하나님 이시지만, 또한 그 크신 긍휼과 자비로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시고, 수 많은 고난과 침체 속에서도 우리를 위로하시고 바다 와도 같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강한 확신 속에 함께 거합시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이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고난과 핍박과 실망과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회들의 이러 저러한 힘겨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산 소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절망적인 감정이나 상황이 폭풍처럼 닥치더라도 그것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도록 하시는 소망의 깊은 바다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바다에 거친 바람과 파도가 일어나도 마리아나 해구와도 같은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오랜 옛날, 중국에서 커다란 물독에 아이가 빠졌습니다. 곧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물독이 하도 크고 높아서 사람들은 허둥댈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지혜로운 한 사람이 망치로 그 물독을 깨버렸고 아이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도 고난과 아픔이 많습니다. 하물며, 거듭남이 없고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우선, 우리 믿는 사람들 자신이 먼저, 고난과 절망의 물독에서 익사하지 않도록 그 물독을 깨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물독을 깨버릴 수 있는 지혜와 망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으며, 그것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소망의 바다 와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고난과 절망을 이겨내는 우리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 지혜를 가지고 직접 우리의 손에 망치를 들고 우리를 익사 시키려고 하는 물독을 깨버리기 위해서는 그 놀라운 복음의 지혜와 능력을 실제로 경험하는 묵상과 그에 따른 깊은 기도의 실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때,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이 깃들게 되어서 그 지혜와 능력으로 실제적인 고난과 절망을 그 소망의 바다에서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망의 바다가 되게 해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였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경건의 실천은 어떤 것들인지 나눠봅시다. (2) 우리에게 소망의 바다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통 속에서 절망하도록 하는 일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샘터의 식구들과 나눠보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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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8월 23일
In 교리묵상
요일 3:21~23/사람을 사랑하는 삶(3)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킬 때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첫 번째의 유익과 복을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오눌 본문을 잘 읽어보면,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두 가지의 복된 유익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 구하는 바를 주께 얻는 다는 것이고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띠로 더욱 단단히 묶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음 가끔,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보면, 이 말씀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씀대로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22절에도 그런 종류의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21절과 22절 후반부의 말씀을 연결해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의 요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 기도응답의 열쇠 이 두 절 속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기도응답의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을 때, 혹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 없을 때, 그 마음이 소유하게 되는 하나님 앞에서의 담대함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바로 뒤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 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거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의 담대함을 잃어버리게 되어서 하나님께 무엇을 자유하고 확신있게 간구 하기가 어려운 마음의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마음이 책망받을 것이 없고 담대함을 얻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매우 구체적인 계명이 무엇인지가 23절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나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지키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담대함을 가져다 주어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3) 믿음과 행함의 균형 보십시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균형을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최우선은 ‘믿음’ 입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이름입니다. 그러면, 그 이름을 믿는 다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이 그의 복음서 전체에서 증언 했던대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진짜 구원자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다’, ‘오직 구원자라 이름하는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그리스도, 곧 진짜 구원자이시다’ 라는 성경 전체의 증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믿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구원 하심을 얻고,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마음의 담대함을 얻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그렇게 요한복음 3장 16장으로만 마치지 않고 바로 뒤에 이어서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은 바로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지킬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것임을 ‘서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입증 하라는 말씀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는 기도응답의 열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진짜 구원자이신 것을 믿고 서로를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형제를 사랑하는 실천이 어떻게 하면 균형을 이룰 수 있겠는지 서로 나눠봅시다. (2) 샘터모임의 오래된 기도제목들에 줄이 그어지는 기도응답을 사모하면서 그 응답의 비밀인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형제를 사랑하는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실제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봅니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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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8월 17일
In 교리묵상
요일 3:14~18/사람을 사랑하는 삶(2)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두번째 설교로서, 우리의 구원과 형제사랑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형제사랑을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 본문을 강해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형제사랑은 구원의 열매 사도 요한이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께 들었던 진리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죄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그 뿌리 부터가 죄악 되기 때문에 그 나무에서는 죄와 악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나무는 자연스럽게 성령의 9가지 열매와 반대되는 악한 9가지 열매를 맺게되지 않겠습니까? 사랑이 아니라 미움, 희락이 아니라 슬픔, 화평과 아니라 불화, 오래 참음이 아니라 쉽게 원망함, 자비가 아니라 무자비한 복수, 양선이 아니라 악함, 온유가 아니라 분냄, 충성이 아니라 불충함, 절제가 아니라 방자함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바로 그러한 논지로 몇 가지의 진리를 이렇게 열거합니다. 첫째, 한 사람이 형제를 사랑하는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인데,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요약을 해보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에 속했다는 것을,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제자들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남기셨었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가장 본질적인 교훈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실천은 결코 율법적이고 단지 윤리적인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일의 뿌리는 철저히 신학적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항상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형제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또한 항상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과 원동력에 대해서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요절인 16절 말씀을 다시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그것도 그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영원한 능력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 십자가 입니다. (2) 어떻게 형제를 사랑할 것인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위하여 마땅히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 중 누구든지 소문난 부자는 아닐지라도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주변에, 그리고 자신의 친족들이나 교회의 지체들의 궁핍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보고 알게 되어서 도와 줄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을 닫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저는 이러한 면이 진리의 절묘한 균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땅히 여길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으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생겨날 때에도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닫을 수도 있는 자유로운 의지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러한 일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랑의 실천이 최대한 자원함과 진실함과 행함으로 이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또한 그러 하셨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그 일을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은 결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형제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지 생각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더욱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형제사랑을 실천하기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샘터모임에서 함께 나눠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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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8월 09일
In 교리묵상
요한일서 4:16~21/사람을 사랑하는 삶(1)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사람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창조의 목적-여호와를 경외하는 자-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명을 지키는 자-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삶** 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스텝의 주제에 대한 개론적인 말씀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상이 되어야 할 주제에 대한 요약 우리는 지금 한 사람, 혹은 한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담론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그리고 어떠한 학문이 ‘이 세상의 천지와 만물이, 그리고 그것의 클라이막스로 지어진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는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주지 못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여러분과 함께 1년여가 넘게 빌드업해온 meta-narrative, 곧 거대한 담론을 다음 몇 가지의 질문과 답의 형태로 다같이 다시한 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항상 첫번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이 천지와 만물이, 그리고 그 가장 중심에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질문과 대답 속에서 두 가지의 가장 위대 하고도 거대한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이요, 둘째는 아무런 생각없이, 즉 아무런 계획과 목적이 없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지혜와 능력으로 완전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며, 첫번째 아담과 함께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곧 탈선한 열차가 제 궤도에 들어서서 본래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고 믿은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보는 것이 바로 복음의 큰 숲을 보는 탁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항상 탈선해 있는 기차와 같아서 우리 존재와 삶의 올바른 궤도에 들어설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으며, 고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곧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삶은 결코 불가능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의 세번째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증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설교시리즈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인정함을 받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 주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그 다음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랑하는 삶’에 대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2)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본문은 사랑의 사도인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에 대해서 매우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만 대표적으로 두 구절만 열거해 본다면, 16절과 19절 말씀입니다. 16절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9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러니까 첫째로, 우리가 사람, 혹은 이웃, 혹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한 그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지적이고 경험적인 고백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곧 하나님 안에 거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적용>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실천이 꼭 필요!! -묵상의 습관을 들이자(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묵상을 실천하라-한 주간 주일메세지 묵상) 둘째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 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것의 증거가 이 십자가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복음 안에서는, 십자가 안에서는,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되어서는 이 두 번째 계명이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것입니다. 최소한 원리적으로라도 말입니다. (3) 하나님 사랑과 형제사랑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그가 가진 모든 확신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떤 반론이 가능하겠습니까? 오직 이 논지에 대해서 반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부정 해야만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배반한 인간에게 도리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셔서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부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찌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말 장이가 되고,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 이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적용>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힘입어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용서와 용납, 말조심, 격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영원한 기반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거하도록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지 생각해 보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 봅시다. (2)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실천은 말을 조심하고 예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안에서 나의 언어생활은 어떠한지 생각해보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떻게 말로 실천할 수 있겠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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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8월 03일
In 교리묵상
마태복음 22:35-39/하나님을 사랑하는 삶(5)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을 한 마디로 정리하셔서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명령을 주신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을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명령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해서 넘어 뜨리려는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큽니까?” 사실,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율법 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함정에 몰아 넣기가 좋았기 때문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가장 크고 가장 우선적인 한 계명으로 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직접적인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우선적인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본질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성경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로 인정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인용 하시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차례로 heart, soul, mind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단어가 공히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진짜성, 혹은 진정성이 있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3)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진짜로, 진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우리의 마음, 영혼, 뜻 곧 우리의 가장 깊은 중심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능을 하는 그 곳의 컨디션을 좋게 해야 하는데, 그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또 더욱 깊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는 방법은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가지고 묵상과 깊은 기도를 실천하는 일을 항상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적인 예배의 중요성 입니다. 위의 첫번째 요소가 개인적인 예배라면, 공적인 예배는 하나님께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지체들로 연합되도록 성령을 보내셔서 만드신 교회로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교회 전체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이 지상에서의 교회는 정말 너무나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적인 예배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이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모든 일들이 실제적으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한 주간 동안 준비하는 일 -예배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의 마음을 유지하는 일 -자신의 몸과 물질을 드려 섬기는 일(주일헌금)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수 많은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일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항상 리마인드하고, 의지적으로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고 있는 지 점검해 봅시다(유투브, 일상적인 루틴 속에) -어디에 가장 많이 돈을 쓰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감정이 불안정해 질 때, 하나님 이외에 어떠한 도피처가 있는 지 점검해 봅시다. 3. 실천적 적용 (1)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진정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늘 이 기도를 먼저 실천해 봅시다. '나는 오늘도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가?’ (2) 주일예배를 준비하고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와 실천을 반성해 봅시다. 한 주간 동안 주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마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천으로서의 봉사와 헌금생활은 진정성 있는 하나님 사랑에 합당한가?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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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7월 28일
In 교리묵상
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4)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이생의 자랑’이 무엇이며, 그것에 빠지지 않으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시리즈 주제에 대한 묵상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 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누구이든지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떠한 부족함도 없고 매우 넉넉한 부자들 이었다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이 매우 자연스러운 세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원수 까지라도 사랑하기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곧 영적인 세계로 건너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이 세상 사랑의 불이 계속해서 타오르도록 하는 ‘돈’을 사랑하는 삶에 몰입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큰 부자 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하는 부 두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부자집의 가정에 태어나서, 또한 어떤 사업을 통해서 부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났거나, 또 다른 하나는 세상과 돈을 자신의 목표로 살다가 큰 일을 만나거나 망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사업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 돈을 에너지 삼아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욕구들을 채우면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곧 자기가 부자이고 자랑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요, 그것의 확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을 간증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이생의 자랑 우선, 사도요한의 표현인 '이생의 자랑’이 용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성경은 ‘the boastful pride of life’ 라고 헬라어 원문을 비교적 더 잘 번역을 했습니다. 원문이나 영어성경은 좀 더 부정적인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서 획득하게 된 물질이나 명예에 대해서 과대 평가하여 스스로 자랑하기도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혹은 좀 더 단순 하게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남보다 치켜 세우면서 자랑을 떠는 것’을 말합니다. 자랑하는 것이 꼭 소유하고 있는 돈이나 물질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태도, 혹은 어떤 성과에 대해서 자랑하거나 과대하게 포장해서 뻐기는 그런 말이나 행동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3) 이생의 자랑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이 세상에 가득차 있는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이 허세와 사실과는 다른 과대한 자기포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던’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과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와의 정상적인 관계,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그들을 계속해서 성장 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어서 죄가 개입되는 방식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순종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담 성장 프로젝트’라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인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천로역정에 등장했던 ‘세상지혜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정상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도, 곧 자신과 온 세상에도 유익을 끼치는 좋은 의미에서의 자랑 스러움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유익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하는 ‘자기를 자랑하는 지혜’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이것이 더욱 부정적으로, 그리고 더욱 더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역병처럼 번져져서 자신보다 똑똑한 것 같고, 자신보다 더 잘난 것 같이 보이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재껴 버리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말과 행위의 가장 밑바닥에는 ‘자기사랑’이라는 경향성이 강력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4) 사도요한의 경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도 요한의 이 명령을 받고 있는 대상이 믿는 사람들이라는 데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말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그리고 이 고귀한 주님의 교회 안에서도 그 누구도 제외없이 이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이러한 종류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 보다 나아. 내가 너 보다 똑똑해. 내 생각이 너 보다 더 옳아. 내가 너 보다 일처리를 더 깔끔하게 해” 심지어, “내가 너 보다 돈이 더 많지. 내가 너 보다 신앙생활을 더 잘하잖아” 그렇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습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법’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의 ‘이생의 자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을 안락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재료들과 에너지들을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 하나님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는 속삭임이요, 이 세상에서 좀 더 여유있게 살면서,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삶의 우선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되도록 하는 경향들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주신 복들을 적절하고 균형있게 누리면서도 매사에,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게으르고 나태하게,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삶을 살게 되면,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정욕 들에 빠져서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성경과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경험이 가진 유일하고 강력한 해결책은 자기사랑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부인’ 이라는 성화의 교리입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고 싶고, 더욱 경험하고 싶은 ‘거룩한 욕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기도하는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이생의 자랑, 곧 자기를 사랑하려고 하는 생각과 삶의 방식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다시 확신되고 그 진리로 인한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 보다 낫다’는 생각이 ‘You are better than me’ 라고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더 낫다고 확신이 든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를 사랑해. 그래서 나의 나음으로 그의 못함을 채워줘야해’, ‘내가 돈이 더 많으니까 이것으로 궁핍한 지체들을 채워줘야지’, ‘내가 더 많이 배웠고 똑똑하고 일도 잘 하니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집사님들과 장로님을, 그리고 목사님을 세워 드려야지.’ 그러한 일을 우리는 ‘자기부인’ 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일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온 세상에게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자기를 부인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우선, 이 교회 안에서, 우리의 소그룹 안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성취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영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서 그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입니까? 아니면,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것들 중의 하나, 혹은 몇 가지들 입니까?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묵상해 봅시다. (2)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 보이거나 낫게 평가받기 위해서 자신을 과대하게 포장해서 말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자기사랑에 빠져서 ‘이생의 자랑’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러한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낮추는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자기부인,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지속적으로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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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7월 20일
In 교리묵상
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3)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안목의 정욕’이 무엇이며, 그것에 빠지지 않으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본문의 논지를 역으로 표현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안목의 정욕’에 빠지게 되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렇게 되면 안목의 정욕에 빠져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아버지의 사랑이 있지 아니하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그가 현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잠시 놔두고 우리 다 함께 가장 오래 전,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 에게로 잠시 가보겠습니다. 창세기 본문을 직접 인용할 필요도 없이 함께 창세기 3장에 있는 한 장면만 떠올려 보겠습니다. 어느 날, 사탄의 화신인 뱀의 유혹에 말려든 하와는 그 날따라 금단의 열매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 위기의 때에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고백 했던 이 말을 오늘 우리의 본문과 연결시켰습니다. 즉 ‘먹음직’ 한 것을 ‘육신의 정욕과, ‘보암직’ 한 것을 '안목의 정욕과,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는 것을 ‘이생의 자랑’과 연결시켜서 이 세 가지의 정체를 밝혀 나갔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안목의 정욕 어떤 한 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은 물론 모든 사물을 탐닉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바로, 하와가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보면서 ‘보암직’ 했다고 하면서 선악과를 따목도록 했던 그것이 ‘안목의 정욕’을 이해하는 탁월한 실마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잘 번역한 ‘보암직하다’를 좀 더 직역해 보자면, 하와가 뱀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선악과를 보았을 때, 그것이 하와의 눈에 즐거움과 심지어 환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정욕이 되어서 사탄의 말에 쉽게 유혹되어서 그것을 먹는 실천력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아담ㅠ에게도 주어서 먹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욕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실천의 능력입니다. (2) 안목의 정욕을 이기는 길 그러면 우리와 같이 ‘성도’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영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이 안목의 정욕을 극복해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강한 영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세 가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내리고 계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말한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심각하게 병들도록 하는 이 세상의 가장 대표적인 금단의 열매라고 하는 것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사도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요,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따먹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이 그러한 사람 안에 거할 수 없도록 하는 ‘안목의 정욕’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비중있게 받아야만 합니다. 둘째로, 청교도 경건의 신학적이고 경험적인 유산과 함께 제 개인의 영적인 여정 속에서 정리된 매우 중요한 요소를 계속해서 여러분과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 말씀드렸던 안목의 정욕이 일어나서 그것이 죄악을 저지르도록 하는 실천력을 얻는 것과 동일한 원리가 그것을 이기도록 하는 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겁니다. 그것이 어떤 것을 보는 것으로 일어나는 성적인 욕망이든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탐닉이든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것들에 의해서 유혹을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고 기억하면서 진심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거기에서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한 행위와 과정을 우리는 ‘묵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왓슨 목사님은 묵상을 정의하면서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 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행위’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진실한 묵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속에서 ‘안목의 정욕’과는 정 반대에 있는 ‘거룩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 그 은혜롭고 거룩한 감정은 우리에게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하는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도록 하는 경건의 능력, 곧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놀라운 실천력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결의 결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한 강한 결단과 실천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묵상의 마지막 열매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이 세상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하는 수 많은 재료와 에너지들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것들을 법적인 정당성을 얻도록 하고 문화적인 옷을 입혀서 누리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열매가 ‘동성애’와 관련된 법과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라고 하는 문화적인 프레임 작업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인 명령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도록 하는 지혜와 경건의 능력을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 지 지난 주 설교를 묵상하며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2)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실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세상에 편승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날들의 삶과 현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서 멀어지도록, 그래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각자 돌아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의 고귀함과 행복을 다시한 번 묵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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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7월 13일
In 교리묵상
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2)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두 번째 설교로서 지난 주일의 개론적인 해설에 이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를 ‘육신의 안목’과 관련해서 강론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랑하면 한다 우리는 지난 주에 이미 매우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랑하면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따르는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거두 절미하고, 하나님께서 사랑 하셨기 때문에 하신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일이었습니다. (2) 빗나간 사랑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빗나간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장 큰 명령을 받고 있는대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인간이 오히려 자기를 더욱 사랑하고, 그 불신앙 적이고 부정적인 자기 사랑의 불을 더욱 타오르도록 하는, 마치 신나와 같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매우 비밀스러운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 입니다. 바로, 이 죄라고 하는 가공할 만한 결과로 인간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결코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빗나간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빗나간 사랑의 실체 그러면 이 빗나간 사랑의 실체를 요한사도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이라고 했고, 더욱 구체적으로 그러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세 가지로 정확하게 꿰뚫었으니 그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빗나간 사랑이라는 불길을 일으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라는 발화제 입니다. (4) 육신의 정욕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어거스틴(Augustine)은 자신의 전 삶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남긴 ‘고백록’ 이라는 참회의 책에서, 사도 요한이 말한 이 3가지가 영혼을 병들게 되는 원인이라고 썼습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정욕 중 가장 절제하기 힘든 것이 성욕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깨어있을 때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한 성욕이 꿈속에서는 절제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몽중에는...내 마음과 육체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커서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실제의 인물을 보고도 하지 못할 짓을 몽중에 있는 나를 설득하여 하도록 한다 ” 사실, ‘육신의 정욕’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육신의 감각기관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식욕(食慾)이나 성욕(性慾)은 모든 생물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적인 욕구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빗나간 욕망이 되고 혹은 쾌락의 목적이 될 때는 성경에서 말하는 정욕이 되는 것이고 세상이나 세상을 사랑하도록 하는 마음의 불꽃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축적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의 정반대인 지독한 ‘자기사랑’의 길로 꿋꿋하게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기사랑을 더욱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돈이나 이성이나 권력이나, 어떤 이점들을 차지할 수 있는 조건들을 방해하는 상황이 되면, 거짓을 일삼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여서라도 그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한 본문 말씀의 유일한 명령은 ‘세상이 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매우 무게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입시다. (2) 설교된 말씀의 논리를 따라서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해 보고,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실제적인 경건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그러한 일을 실제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감정을 일으키도록 하는 일을 묵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적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실천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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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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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06일
In 교리묵상
요한일서 2:15,16/하나님을 사랑하는 삶(1)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시리즈의 첫번째 설교로서 넓은 의미에서 샘솟는 교회가 추구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 대한 두 번째 단계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 설교는 이 시리즈의 개론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무엇인지를 강론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사랑의 기원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직접적인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이해한 무수한 사랑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세계와 거기에 속한 사람들과는 전혀 그 기원이 다른 신앙의 세계, 곧 영적인 세계,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세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또 하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앎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부정적인 예를 들어서 죄송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코비드 19 이라고 하는 이 바이러스 역시, 처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9년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에서 처음 확인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가장 최초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기에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논리로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처음으로 시작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답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고 했으며, 그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이 세상을 창조 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사와 인간, 그리고 이 세상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 했을 때에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셨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공산주의자들처럼, 거짓된 이론에 세뇌된 결과가 아닙니다. 결단코, 어떤 억압이나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는 가운데, 인간의 가장 깊은 곳, 곧 인간의 본질인 영혼이 거하는 마음 안에서, 오직 성령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말할 수 없는 자유함 이라는 자궁에서 잉태되어서 출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곧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잣대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생활이 건강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한 진단은 이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진단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라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하면 우리 각 개인의 영적인 상태가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살고, 타고, 놀고 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어디 에리조나 사막에 동굴을 파고 수도승으로 살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그것들을 사용하고 때로는 누리되 ‘사랑하지는 말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침내, 사랑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보고 싶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그 아래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 때에는 16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정욕, 자신의 눈이 보고자 하는 정욕,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 자랑하고자 하는 정욕 등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치과 삶의 방식 아래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마음과 삶 안에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에 대한 정욕들은 모두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숙제요, 구체적인 적용점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것도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찬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사랑 아래에 복종시키게 됩니다. 그러면,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삶의 가치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가장 뚜렷한 증거인 두 가지의 묵상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 봅시다. ‘나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2)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과 연결되어 있는 이 세상의 부정적이고 죄악된 것들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설교자의 권면처럼, 그것들과 그것들에 의한 생각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치에 복종시키고 있는지 기도 속에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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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6월 22일
In 교리묵상
사도행전 2:42~47 /성경적 교회세우기(5)-샘터 소그룹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마지막 설교로서 초대교회의 모델에서 나타난 대그룹과 소그룹의 특징들과 그 결과들에 대하여 사도행전 본문을 강해하고 우리 교회의 대그룹과 소그룹 사역에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대그룹 사역 초대교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믿는 사람들이 성전에 대그룹으로 모이기도 하고,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이기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2장 초반부의 기록처럼, 베드로 사도의 능력있는 설교를 통해서 믿는 자의 수가 삼천이 더해지면서, 다함께 모이는 교회의 규모가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일 후에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기는 하지만, 대그룹으로 모인 교회는 42절의 말씀대로 크게 네 가지의 일에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것은 차례대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일, 서로 교제하는 일, 떡을 떼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경적인 지지를 받는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 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새로운 샘터모임을 포함해서, 교회의 모든 사역들 중에서, 항상 우선적이고 우의적인 교회의 일이어야 합니다. 설교의 내용을 ‘sermon’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성경적이요, 신학적 이어야 하며, 또한 설교하는 행위를 ‘preaching’ 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성령의 능력을 힙입어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네 가지의 일과 함께 초대교회 전체가 매우 특별하게 실천했던 또 한가지의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이었습니다. 또 자신의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2) 소그룹 사역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또 한 가지의 매우 중요하고도 은혜로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주제인 ‘샘터 소그룹’이 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게 다 같이 모이기를 힘 썼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모이는 것도 힘썼습니다. 그리고는 가장 우선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도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모임에서는 더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샘터 모임 설명> 새롭게 시작할 샘터모임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을 섬길 목자들 모두는 앞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어려움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 이라는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5주에서 6주에 한 번씩 저녁을 준비하게 될것 같은데, 저와 우리 소그룹 리더들은 그 일이 정말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준비되고 함께 먹는 ‘사랑과 교제의 식탁’ 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지혜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음식의 맛이나 종류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 샘터 식구들의 힘겨웠던 한 주간의 삶을 뒤로하고 ‘기쁨’을 쉐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진솔한 마음으로 음식을 즐기고 우리 샘터 식구들의 관계를 즐기는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물론, 준비하는 비용이나 수고의 어려움이 예상 되기는 하지만, 그 수고와 섬김이 가져다줄 유익이 더욱 클 것이기에 우리가 함께 이 아름다운 식탁의 교제를 위하여 서빙 한다면 우리의 샘터모임이 더욱 풍성해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집에서 했던 일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 일은 이 두 번째의 일을 위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식사하고,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을 나누면서,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도 나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가페 만찬과 우리의 삶의 나눔과 함께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여 서로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거룩한 모임’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초대교회가 그렇게 대그룹으로나 소그룹으로 신실하게 사역을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좀 더 직역을 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았다’ 고 했습니다. 그들의 모임과 그들의 사랑의 교제에 매력을 느꼈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 없이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우리들의 수고와 헌신을 사용하시고, 우리 성도들 상호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사용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사용하셔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를 더하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샘터 모임에서 이러한 구원의 역사도 간절히 기대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먼저는 우리 성도들 간의 사랑과 교제를 보시고,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찬미와 사랑을 보시고, 또한 이 지역사회를 향한 봉사와 구제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샘솟는 교회가 다같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사역들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는 일,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지, 그리고 목회자를 비롯한 우리 모든 지체들이 그 일에 마음을 드리고 있는지… (2) 우리 샘솟는 교회의 소그룹 사역은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쁨, 삶의 고통, 사명’ 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그 나눈 일들이 응답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를 더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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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5일
In 교리묵상
골 1:21~25/성경적 교회세우기(4)-헌신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네 번째 설교로서 ‘영적인 유기체’ 로서의 교회, 곧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헌신’을 통해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을 골로새서 본문을 통해서 강해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골로새 교회의 자라남과 구원의 목적 사도 바울은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주제와 같이, 1장의 초반부에서 자신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의 목회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열매를 맺어 자라났다고 기쁘게 증언하고 있고,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의 일을 행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이렇게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18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 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성경은 우리가 받은 구원도 무척이나 값진 것이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멤버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을 세우셨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그것의 궁극적인 마스터 플랜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더욱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로 인하여 불화하게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해지고 그 하나님과 충만한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는 것,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를 통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 곧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신 가장 장엄하고 영광스럽고 위대한 목적은 첫째로, 이 세상과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케 되도록 피스메이커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 곧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게 돌려야할 마땅한 명예와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헌신의 필요성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위대한 일을 위하여 놀랍게도 심히도 연약한 인간의 헌신을 사용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신에 관한 간증 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21절의 말씀처럼, 불신앙과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겨지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의 지체들도 세우려는 원대한 계획 속에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하며 간증합니다. 사도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먼저, 저 같은 복음의 일꾼들을 숙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오늘의 주제구절인 24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의 이 표현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으로서 그 일을 할 때에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여러가지 결핍과 핍박, 그리고 육체적이고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모든 고통과 고난을 연약한 육체를 지닌 자신이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그러한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하고, 그 고난이 단지 자신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기 때문에,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따르는 고난 이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에 그 고난을 채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의 중심과 삶을 ‘헌신’ 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여러 크고 작은 공동체들, 또한 매우 규모가 큰 공공기관이나 한 나라를 올바르게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샘솟는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여기에 그렇게 헌신해 오신 산 증인들이 여기에 계십니다. 저는 그 모든 면들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나,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릴 때에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주축이 되는 멤버들이 이제 나이가 드시고 예전과 같이 엑티브하게 헌신하기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아주 젊지는 않지만, 비교적 젊은 복음의 일꾼을 이 교회에 보내주셨으니까 우리 장로님과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뒤를 이어갈 여기 계시는 비교적 젊으신 집사님들과 비교할 수 없이 젊은 일꾼들이 그 바통을 물려받아 선배님들의 기도와 격려를 받으면서 저와 함께 헌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서 자라나고, 온전한 사람들로 세워져 갑니다. 3. 실천적 적용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로 부르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마땅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 일입니다. 우리 샘솟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과 우리 교회가 세워져 가고 있는 그 위대한 목적이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지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한 영혼이 구원되는 일에 헌신하도록 합시다. (2) 우리 샘솟는 교회를 위하여 오랜 동안 헌신하셨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격려하고 우리의 선배들처럼 헌신하기를 다짐해 봅시다. 또한 우리와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온전히 세울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자라나고 함께 헌신할 일꾼들을 또한 보내주시기를 간구합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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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hunjoon23
Pastor
2022년 6월 07일
In 교리묵상
에베소서 4:11-15/성경적 교회세우기(3)-자라나는 교회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설교로서 ‘영적인 유기체’ 로서의 교회, 곧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어떻게 자라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에베소서 본문을 강해하여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성도의 온전함과 봉사의 일을 하게 함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그 자라남의 정도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즉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여러분 각자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 있는 거룩한 커뮤니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커뮤니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 거룩하고 복된 우리 샘솟는 교회 공동체가 계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무엇보다도, 우리 샘솟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인 제가 목회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사 자신이, 그리고 성도들인 여러분들이 11절의 말씀처럼, ‘그가’ 곧, 이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의 목사로 삼으셨다, 원어적으로는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한 목사를 지역교회의 목회자로 주신 분이 바로 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목사 자신도, 그리고 여러분들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과 저 사이에 인격적인 목양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상호간의 약점과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가 우리를 목자와 양으로 만나게 해 주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관계속에서 한 목사가 목회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잘 하는게 무엇이냐 하면 그처럼, 영적으로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잘 빌드업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영적으로 구비시키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됨 둘째로, 우리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지난 주에 잠시 말씀드렸던 것처럼, 13절과 14절의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는 성도를 잘 구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성숙한 사람들로 자라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되기를 힘쓰십니다. 오직 마음을 그 일에 함께 기울입시다. 매 순간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사용하고, 그를 더욱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일을 계속합시다. 우리는 한 예배당에 이렇게 대그룹으로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할 때 뿐 아니라, 샘터 모임처럼 소그룹으로 모여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에도, 그리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좀 더 깊이가 있는 교리와 성경공부를 함께 할 때에도 ‘예수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전진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 교회는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3)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자나나기 위해서는 15절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도는 교회가, 곧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두 가지의 요소, 곧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요소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진리와 사랑’ 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 안에 거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 그 분과의 사랑의 교제에서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묵상의 의무와 기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마음 속에 충만하지 않고서 그가 말하는 진리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나 권면이나, 자신의 주장은 의미는 있지만 거룩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안에 거하면서도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고 그 진리를 말하는 일, 곧 전도의 일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범사에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한 인간 설교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가슴엔 그리스도의 불과 같은 사랑을, 머리엔 찬란한 진리의 빛을…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러 하셨기 때문이며, 그 분이 오신 이유가 우리의 무지하고 어두운 지성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며, 우리의 냉랭한 가슴에 사랑의 불을 던지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열렬한 기도와 묵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더욱 드리십시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불붙은 진리를 서로에게 말합시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하여 말하십시다. 성경은 분명히, 그러한 일을 해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에게까지 자랄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성경대로 교회는 자라날 것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우리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을 잘 구비시켜서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예수께서 보내주신 목사가 그의 직무를 잘해야 합니다. 목사 자신이 목회에 대한 마음과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 목사를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격려와 협력은 또한 어떠한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계속해서 정진하는 샘솟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 사도는 교회의 자라남에 있어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믿음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고, 목회자가 권면하는 주일설교를 한 주간 동안 묵상하며, 깊이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러한 일들을 신실하게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3) 교회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체들인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참된 것, 곧 진리를 서로에게, 그리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깊은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고, 성도들 상호간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실천을 지속하도록 합시다. (4)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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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2022년 5월 31일
In 교리묵상
에베소서 4:11-15/성경적 교회세우기(2)-영적인 유기체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 설교의 개요 이번 주일 메세지는 ‘성경적 교회세우기' 시리즈의 두번째 설교로서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에베소서의 성경본문과 함께 사도신경,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교회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2. 설교의 요지 (1)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기체성 사도는 오늘 본문 4장 15절을 비롯해서 다른 두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머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1장 22, 2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스림’, 곧 ‘통치’, 혹은 ‘주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것은 그의 몸인 교회를 주관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그리고 그 교회의 각 지체들인 우리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신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샘솟는 교회’라고 하는 한 지역교회의 성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적 교회, 곧 보편교회의 한 지체가 된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들의 소유하고 계신 자랑스러운 그 어떤 멤버십보다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1년에 몇 백불, 혹은 몇 만불을 내고 리뉴를 해야만 하는 멥버쉽이 아니라, 한번 가입되면 영원한 멤버십을 보장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그니처가 있는, 헤븐리 다이아몬드 멤버십입니다. (2) 교회인 지체들간의 유기체성 이 첫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하고 기반이 되는 것이지만, 오늘 저는 마지막 이 두 번째 요소가 목회적인 면에서 또한 중요하고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와 우리 각자의 유기체성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머리이심을 고백하는 우리 각자가 상호적으로 또한 유기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55문과 그 답이 그것을 너무나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 첫째, 모든 성도들은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들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각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각 성도들, 곧 그 몸의 지체들은 ‘서로 교통’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제가 여기에서 1장 23절을 한번 더 가져와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교회가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충만함’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 곧 창조주시요, 전능자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함, 그것 자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놀라운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서로 교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놀랍게도 가장 표준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들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세우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부요와 모든 은사들을 그의 지체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레스토랑’에서 all you can eat every single day!! 이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은혜요, 복음입니다. (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성경의 가르침은 언제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만 합니다. 특히, 바울은 언제나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구원의 교리를 잘 설명합니다. 특히 에베소서 에서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 교리의 결과로 만들어진 교회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은혜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행해야 할 일들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그러한 점이 바로 성경의 건강한 균형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충만함 속에서 능동적으로 무엇을 행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통’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각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11절,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물론, 어떤 직분들은 성경시대와 함께 없어진 것들도 있고, 또한 어떤 직분들은 이후에 생겨난 것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직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직분이 주어지고 그러한 직분에 걸맞은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도 기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각자의 직분과 은사를 가지고 서로를 섬기는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도 놀랍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 일에 하나가 되어서 도달해야 할 지점이 무엇입니까?우리 모두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충만함 속에 있는 그러한 장성한 분량’ 까지 입니다. 3. 실천적 적용 (1) 영적인 유기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각 멤버들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성도의 교통’을 누리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함, 곧 그의 부요함과 그가 주시는 은사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또 그것을 성도 상호간에 어떻게 교통할 수 있을지 묵상과 기도라고 하는 경건의 실천과 관련해서 생각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2) 교회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는 일에 있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라는 정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샘솟는 교회의 멤버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주중에 많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매 순간마다 예수 그리도는 믿는 믿음과 그를 아는 일에 서로서로가 하나되기를 힘쓰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실천해 봅시다. (3) 왓슨 목사님의 조언대로 깨달은 진리가 묵상되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에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으로 사용 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교제하는 묵상의 실천을 성실히 행합시다. **묵상의 본질에 대한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두 세번 반복해서 읽고 그 의미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해 봅니다. '영혼이 조용히 물러나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속에 거룩한 감정이 솟아나게 하는 활동이다.'(토마스 왓슨) **수요일은 오전 6:00부터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토요일은 6시부터 '묵상의 이론과 실제' 에 대한 말씀 후에 6시 20분 부터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기도를 마치고, 편안하게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 묵상가이드 1. 우선, 기도하는 시간과 습관을 가지도록 구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합니다. 2. 기도할 때, 급하게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부터 하지 말고, 주일 메세지와 천로역정의 내용을 가지고, 혹은 각자가 읽었던 성경의 말씀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언어로 되뇌이고 자신의 귀에 들리도록 자신의 언어로 말해봅니다. 3.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구별된 장소와 시간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묵상은 빈번하게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효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그 과정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에 은혜로운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affection, 정동). (2)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이나 어려움들을 터치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녹아내리게 하시며, 참된 회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3)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을 누리게 되고 어느 때에는 간절함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혹은 타인이나 자신을 위해서 진정한 간구를 올릴 수 있게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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